약값 부담 3배로 늘기 전에… 사전피임약 ‘사전 사재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9일 03시 00분


사전피임약 8월부터 처방전 없이 못사게 추진하자… ‘약국 진풍경’

식품의약품안전청이 7일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사전경구피임약을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 바꾸는 ‘의약품 재분류안’을 발표하면서 피임약 사재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식약청이 분류안을 확정하면 이르면 8월부터 처방전 없이는 사전피임약을 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회사원 최모 씨(24·여)는 “사전피임약의 유통기한이 2년 정도인 만큼 의사 처방이 필요해지기 전에 많이 사놔야겠다”고 말했다.

가격 상승에 대비해 미리 사놓으려는 사람도 있다. 대한약사회에 따르면 사전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하면 의원 수가가 많게는 1만2890원 추가돼 현재 한 상자(21알)에 7000∼8000원인 소비자의 약값 부담은 3배가량인 2만1000원 수준으로 높아진다. 현행 보험 규정상 피임과 관련된 진료는 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다. 여기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내는 약국 수가 4000∼8400원까지 포함하면 국민 부담이 4배까지 늘어나는 셈이다. 평소 사전피임약을 이용하지 않았던 회사원 박모 씨(25·여)도 “약값 부담이 높아지기 전에 일단 사둬야겠다”고 했다. 그러나 식약청 관계자는 “의사가 별문제 없다고 판단하면 1회 진료로 최장 1년 치도 살 수 있다”며 “1년 치를 한꺼번에 산다면 처방비 부담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성 인터넷 카페인 ‘쌍화차코코아’ ‘소울드레서’ ‘화장발’ 카페로 구성된 ‘삼국카페’에서도 “곧 휴가철인데 언제 병원 가서 처방전 받고 약을 사느냐”며 “약을 미리 사두자”는 글이 폭주했다. 가정주부 조모 씨(30)도 “피임뿐 아니라 여행 전 생리를 늦추거나 불규칙한 생리 주기를 조절하기 위해 복용하기도 하는데 일일이 처방받기 번거롭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실제로 8일 서울시내 약국에서는 평소보다 많은 분량의 사전피임약을 구입하는 여성이 꽤 있었다. 한 여대 앞에서 약국을 하는 오천권 씨(59)는 “식약청 발표가 난 7일 사전피임약 2개월 분량을 사 간 여학생이 하루 만에 다시 와 2개월 치를 더 사 갔다”며 “한 번에 3개월 치만 판매하기 때문에 여러 약국을 돌아다니면서 약을 사 두는 것 같다”고 전했다.

사전피임약의 전문의약품 전환에 대한 대학 총여학생회의 반응은 갈렸다. 고려대 여학생위원회는 “여성의 접근성과 성적 결정권을 심하게 침해하는 결정”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사후피임약을 처방 없이 구입할 수 있게 한 결정에는 찬성했다.

연세대와 한양대 총여학생회는 사전피임약에 대해서는 “오남용을 줄일 수 있다”며 처방 의무화를 환영하고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에는 반대했다. 강효인 연세대 총여학생회장(23)은 “사전피임약보다 호르몬 농도가 10∼15배 높은 사후피임약을 남용할 것이 우려된다”고 했다.

사전피임약의 전문의약품 전환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던 여성단체들도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사후피임약은 응급약 성격이 강해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부작용 위험이 큰 사후피임약을 성급하게 일반의약품으로 바꿨다”고 비판했다. 주부 단체인 ‘고향을 생각하는 주부모임’ 관계자는 “신중한 성관계를 위해 모든 피임약에 처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채널A 영상] ‘응급피임약’ 약국서 판매하지만 ‘사전 피임약’은…


#사전피임약#사재기#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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