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다음 달부터 도입되는 포괄수가제에 반발하며 ‘수술 거부’ 카드를 꺼내자 정부가 “흔들림 없이 시행하겠다”며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
대한의사협회장과 외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안과 개원의사회 회장은 다음 달 1일부터 1주일간 수술을 거부하기로 12일 합의했지만 산부인과 의사들은 “제왕절개의 특수성을 고려해 정상적으로 수술하겠다”며 물러섰다. 시민들은 안도하면서도 환자를 볼모로 요구를 관철하려는 의료계를 비난하고 있다. ○ 진료 거부하면 처벌키로
보건복지부는 “일부 의료단체에서 진료 거부를 결의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다. 진료를 거부하는 의사는 형사처벌하고 면허를 취소할 방침”이라고 13일 밝혔다.
복지부는 의협이나 진료과목별 학회가 실제로 진료 거부를 조장하며 행동에 나서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검찰과 경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실제로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사들이 대규모 파업에 나서자 의협회장이 고발돼 유죄를 선고받았다.
포괄수가제 시행에 대한 추가협상도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배경택 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1년 정도 유예기간을 갖자는 의협의 주장에 대해 “10년 넘게 시범사업을 거친 데다 의협의 전 집행부와 협의가 모두 끝난 문제다. 제도 시행 뒤에 문제가 나타나면 그때 가서 보완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의협은 “정부 주장대로 70% 이상의 병의원이 포괄수가제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정부는 강제적용이라는 무리수를 철회해야 한다.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산부인과의사회는 다른 목소리
의협은 “(수술 거부와 관련해) 지방의사회별로 투표를 해야 한다. 이런 절차를 끝내고 19일 공식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밝혔다. 송형곤 의협 대변인은 “구체적으로 어떤 질병군의 수술을 포기할지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다만 응급진료인 맹장수술은 계속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병원 단체인 대한병원협회는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수술을 거부할 수 없다”고 했다. 정영호 병협 정책위원장은 “의협이 무조건 수술 거부로 가더라도 병협이 따라갈 순 없다”고 선을 그었다. 병협은 지난해까지 포괄수가제 적용을 반대했지만 올해에는 찬성 의견을 냈다.
중소병원 의사들이 수술을 거부해도 환자들은 종합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포괄수가제가 7월부터 시행되는 곳은 의원과 중소병원이다. 종합병원은 내년 7월부터 시행된다. ○ 애꿎은 환자들만 불안
출산을 한 달 앞둔 교사 조모 씨(29·여)는 태아의 체중이 평균보다 높아 제왕절개 수술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는 “정부와 의사들의 힘겨루기 탓에 중간에서 환자만 피해를 본다”고 하소연했다.
‘맘스홀릭’ 카페 등 인터넷 육아 커뮤니티에도 예비 엄마들의 글이 폭주했다. “산모와 아기 목숨을 담보로 파업하려는 거냐”며 의협을 비판하는 내용과 수술을 받지 못하게 될까 우려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산모라고 밝힌 이용자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잊은 거냐”고 비난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상임대표(42)는 “환자 건강을 우려해 포괄수가제에 반대한다면서 정작 진료를 거부해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의협의 결정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했다.
의협이 맹장 및 제왕절개 등 응급수술은 거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자영업자 이모 씨(47)는 “의협이 언제 또 태도를 바꿔 수술을 거부할지 모르는 것 아니냐”고 했다.
포괄수가제 시행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다. 산모 윤모 씨(31·여)는 “같은 제왕절개 수술도 지역마다 부르는 가격이 70만 원까지 차이가 나 거품이 있지 않은지 항상 불안했다”며 정찰제 시행을 환영했다.
그러나 의료서비스 질이 낮아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아이디 ‘grey****’는 음식점에 비유해 “값이 싼 뷔페에서 1등급 한우 갈비가 나오겠느냐”고 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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