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 보신각 앞. 정오 타종을 5분 앞두고 시민 타종 행사를 보러 40여 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보신각을 관리하고 있는 서울시 문화재과 소속의 신철민 씨(39)가 “보신각 종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려면 관람료를 내셔야 합니다. 이 자리에 오신 이상 모두 내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무료 행사인 줄 알았던 관람객들이 웅성웅성하며 발길을 돌리려 했다. 돌아서는 관람객들을 막아서며 신 씨는 “종이 울리기 직전에 박수를 치며 카운트다운을 함께 하는 것이 오늘의 관람료입니다”라고 농을 던진다. 마음이 풀어진 관객들도 크게 웃으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5, 4, 3, 2, 1.” 정오가 되자 보신각종이 ‘댕 댕 댕’ 울렸다. 》
○ “보신각에 뼈를 묻고 싶다.”
보신각 종지기 신 씨는 6년 전 전통 문화체험을 진행하는 행사업체 직원으로 일하기 시작하며 보신각종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보신각 관리소장은 삼대에 걸쳐 보신각을 지켜 온 고 조진호 씨였다. 종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조 전 소장에게 타종과 관리 방법을 배운 뒤 신 씨도 보신각종과 사랑에 빠졌다.
그해 12월 암 투병 중이던 조 전 소장은 “내가 죽으면 이곳을 지켜 달라”는 유언을 신 씨에게 남겼다. 신 씨는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평생을 종과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전문성을 인정받아 2007년 3월 정식 서울시 직원으로 채용되기도 했다.
○ “종은 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시민 타종 행사가 끝난 뒤에도 신 씨의 ‘종 사랑’은 계속된다. 종 망치로 종을 약하게 5, 6번 친 뒤 두 팔을 벌려 종을 감싸 안는다. 신 씨는 “소리를 듣고 균열은 없는지, 소리가 변하지는 않았는지 점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겨울에는 종을 치기 전 미리 ‘마사지’를 해 준다. 종을 약하게 진동시켜 추위에 얼어 있는 종을 깨우는 일이다.
종 망치를 관리하는 것도 신 씨의 일이다. 예전에는 소나무로 만든 종 망치를 썼다. 1979년부터 쓴 소나무 망치는 수분을 잃고 굳어 버렸다. 2007년에는 “종소리가 이상하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있었다. 신 씨는 전국에 산재한 범종을 조사하며 보신각종에 가장 어울리는 나무를 찾아 헤맸다. 단단한 소나무보다는 조금 무른 플라타너스가 종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도 좋은 소리를 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2008년 플라타너스로 만든 종 망치를 새로 달자 종소리 논란도 잠잠해졌다.
○ “소원 들어주는 종 보러 오세요.”
신 씨는 2006년 11월부터 시작된 상설 타종 행사의 진행자로 일하고 있다. 시민들이 종을 가깝게 느끼도록 2011년 ‘소원을 말해봐’ 코너를 만들었다. 관객이 종에 손을 대고 울림을 느끼며 소원을 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코너를 통해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하고 결혼 승낙을 받은 남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신 씨는 “보신각종은 전국에서 소원을 잘 들어주는 3대 종 중 하나”라고 자랑을 한다.
“저도 힘들 때는 종을 안고 하소연을 합니다. ‘종님’은 대답이 없지만 신기하게도 마음은 가벼워지죠. 이곳에서 소원을 비는 모든 분의 소원이 이뤄지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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