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전은 만난 지 하루 만에 시작됐다. 앞으로 함께 지내면서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하는 자리. 담배 문제부터 제동이 걸렸다.
“여긴 교육기관이니까 안 돼.” “하루에 한두 갑씩 피웠는데 갑자기 어떻게 끊어요.”
학생들은 담배를 피우겠다고 요구했다. 교사들은 안 된다고 했다. 미성년자이니 절대 금지라는 말을 듣고 학생들은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면 하루 15개비로 해요.” “안 돼. 5개비로 해.” 》
회의가 계속됐다. 무려 10시간 만에 합의했다. 모든 담배는 교사가 관리하기로. 하루에 7개비만 주고 2주차부터는 하루에 1개비씩 줄이기로. 단, 금연에 도전해서 성공하면 상품을 주기로.
서미숙 교사는 “교육기관에서 담배를 허용하는 건 잘못”이라면서도 “주먹이 아닌 말로 설득하고 교사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학생들이기에 흡연권을 공공연히 요구하고, 교사들이 진땀을 흘리며 설득했을까.
○ 충돌과 갈등으로 시작
강원 춘천시 남면의 강원학생교육원. 남자 중고교생 32명이 지난달 21일 도착했다. 염색한 머리, 커다란 귀고리, 팔뚝의 문신…. 학교폭력 가해자와 비행 청소년이 대부분이었다. 교사에게 폭언이나 폭행을 했던 학생도 있었다.
학교에서 폭력이나 비행을 저지른 학생에게 특별교육을 이수하라는 처벌을 내리면 해당 학생은 외부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강원학생교육원은 그런 기관 중 하나다.
학생들은 첫날부터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발, 내가 왜 여기 와야 돼.” 교육원에서 4주 동안 합숙하며 교육을 받아야 학교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 욕을 내뱉었다.
흡연 허용 문제는 이틀째 되던 날, 강당에서의 마라톤 회의로 일단락을 지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주먹깨나 쓴다는 아이들이 모인 만큼 분위기는 언제나 일촉즉발 상황. 사흘 만에 일이 터졌다.
축구 경기 중에 심판을 맡은 교사가 골킥을 선언했다. 학생들은 코너킥이라며 반발했다. 정훈이(가명·중3)는 교사에게 욕을 했다. “×발 안 해.” 그러고는 짐을 싸서 집에 가버리겠다고 했다.
다른 교사가 정훈이를 휴게실로 데려갔다. 흥분을 가라앉힌 다음에 “욕을 들은 선생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라고 물었다. 정훈이는 잘못을 인정했다. 그리고 심판을 맡았던 교사에게 사과했다. 그날 저녁 학생과 교사들이 자치회의를 열었다. 교사에게 불손한 행위를 하면 벌로 새벽 등산을 하기로 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분노를 잘 참지 못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단 욕을 하고 주먹부터 나갔다. 그래서 오전에 체육활동을 한 뒤 저녁에는 집단 상담을 했다.
교육원은 학급을 7, 8명으로 만들었다. 담임교사 2명이 들어가 앉았다. 집단 상담 때는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르게 했다. 선배나 교사에게도 반말을 허용했다. 영준이(가명·고1)가 교사에게 화난 게 있다며 말을 꺼냈다. “아까 농구할 때 네가 반칙을 많이 해서 열 받았어.” 교사는 “나도 이기고 싶어서 심하게 한 것 같아. 미안해”라고 대답했다.
김용희 교사는 “이 아이들의 폭력적 성향은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해서 나타난다”며 “반말로 친근하게 자기감정을 털어놓다 보면 분노도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
학생들은 같이 먹고 자면서 금세 친해졌다. 철훈이(가명·중3)는 “처음에는 출신 지역별로 파가 나뉘어서 한번 붙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말을 트고 나니까 다들 친해졌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모두 기피하는 아이가 있다. 준혁이(가명·중3)였다.
말수가 적다. 키가 작고 힘도 세지 않다. 그런데 화가 나면 칼이나 송곳을 뽑아 든다. 학교 친구의 손바닥을 칼로 그은 적도 있다. 교육원 학생들은 준혁이를 ‘칼잡이’라고 부르며 다가가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칼이나 총 같은 무기류를 찾는 게 일과였다. 교사들조차 준혁이를 다루기 어려워 외부 전문가를 불렀다.
상담가는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학대를 받고, 전쟁게임에 빠진 결과다. 게임에서 보는 미군은 그에게 영웅이었다. 왜 칼을 휘두르느냐는 질문에 준혁이는 입을 열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상담가는 “마음속에 보석이 있는 아이인데 어릴 때 상처가 너무 크다.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동석 원장은 “미리 편성한 예산으로 치료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교육원 생활이 2주를 넘어가면서 학생과 교사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굳게 입을 다물었던 학생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속 깊은 얘기를 하나둘 꺼냈다. 교사에게 대들었다가 새벽 산행을 가는 학생들이 점차 없어졌다.
학생들에게 좀 더 힘든 일을 견디는 훈련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3주차에 해병대 캠프를 찾았다. 2박 3일 일정이었다. 김연숙 연구사는 “학교라는 틀조차 견디지 못했던 아이들이 군대라는 틀을 견뎌낼지 걱정 반 기대 반”이라고 했다. 인천 무의도의 해병대 캠프로 향하면서 아이들은 “교관이 열 받게 하면 패버리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얼음장 같은 교관의 고함 소리에 학생들은 처음부터 긴장했다. 제식훈련과 보트훈련을 군소리 없이 견뎌냈다. 훈련을 지켜보던 지근복 교사는 “내가 알던 애들이 맞나 싶다. 잘해 내는 모습을 보니 기특하다”고 했다.
○ 지금부터 달라지겠다고 다짐
교육 수료를 하루 앞둔 14일 오전부터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저녁에 부모 초청 행사에서 장기자랑을 하기 위해서였다.
교사들은 어느 학생의 부모가 참석할지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이번에 입소한 학생들은 집안이 어려웠다. 32명 중 12명의 부모가 이혼했다. 할머니와 함께, 아니면 혼자 사는 학생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절반 이상의 학부모가 참석했다. 부모가 오지 못하면 담임교사가 왔다.
이동석 원장은 평소 “학교와 가정에서 이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는 것만이 학교폭력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이 원장은 이날 모인 가족들에게 “아이들에게 관심 갖고 교육원을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며 인사를 했다.
오후 7시부터 사물놀이와 댄스 공연이 이어졌다. 영석이(가명·고1)는 무대에 올라 YB의 ‘나는 나비’를 불렀다. “봄바람이 불어오면 이젠 나의 꿈을 찾아 날아”라는 가사처럼 최고의 트럼본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찾은 학생.
장기자랑이 끝나고 학생의 다짐을 담은 영상이 나왔다. 화가 나면 칼을 꺼내 들던 준혁이는 “학교에 돌아가면 같이 잘 지내보고 싶어요. 보고 싶은 친구들도 있어요”라고 했다. 정민이(가명·중2)는 “선생님한테 욕했던 게 미안해요. 학교 가면 대들지 않고 공부를 시작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마지막은 편지 낭송. 학생과 부모 모두 편지를 미리 준비했다. 승훈이(가명·중3)는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어렸을 때 왜 그렇게 살았나 생각도 하겠지만 후회만 하지 말고 지금부터 달라지면 돼. 훌륭한 경찰이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아보자”고 말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승훈이 아버지도 편지를 읽었다. 마이크를 잡으면서 목소리가 떨렸다. “아들에게 처음 편지를 써보는구나. 4주간 잘 지내줘서 고맙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아들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앞으로도….”
아버지는 한참 동안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흐느꼈다. 다른 부모들도 같이 울었다. 어디에선가 박수 소리가 들렸다. 짝짝짝…. 구석에서 시작된 박수 소리가 강당에 크게 울려 퍼졌다. ▼ 친구 때리고 돈 빼앗던 중3 민수 “청소년지도사 될래요” ▼
부상으로 야구 포기후 방황… 본인이 간청해 두번째 참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이런 기분은 처음이에요.”
강민수(가명·중3) 군은 올해 4월 강원학생교육원에 1기로 들어왔다. 4주 교육을 무사히 받았는데 이번 2기 교육에 다시 참가했다. 본인이 제발 다시 보내 달라고 교사에게 간청했기 때문이다.
민수 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야구선수였다. 가혹한 훈련에 어깨가 고장나버렸다. 팔을 들 수조차 없었다. 의사는 앞으로 야구를 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완전히 좌절했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교실에 앉아 있기가 싫어서 수업을 자주 빠졌어요.”
공부에 관심 없는 친구들과 놀다 보니 그는 어느새 비행청소년이 됐다. 술 담배를 하고 친구들을 때리고 돈을 빼앗았다. 어느 날 교사가 민수 군에게 “강원학생교육원에 가보겠느냐”고 물었다. 어차피 학교에 가기 싫은데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원 교사들은 상담을 통해 매일 민수 군의 얘기를 들어줬다. 무조건 따르라고 하지 않고 함께 논의해서 규칙을 정했다. 그는 고마움을 느꼈다. “나를 존중해주니까 나도 존중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선 담배부터 끊었죠.”
민수 군은 교육원에서 만난 청소년지도사를 보고 꿈이 생겼다. “저 같은 아이들에게 꿈을 갖게 해주고 싶어요.” 청소년지도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교사들은 “민수가 제일 못하는 영어공부부터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학교에 돌아간 민수 군은 영어교사를 찾아가 “내가 외울 수 있는 수준의 영어 단어를 적어 달라”고 했다. 교사는 귀를 의심했다. 교과서를 한 번도 펴지 않던 학생이었기에.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던 교육원에서 2기 교육을 받은 민수 군은 ‘인턴교사’라 불리며 교사들의 보조 역할까지 해냈다. 이동석 원장은 “30여 명을 교육해서 민수 같은 학생이 1, 2명만 나와도 기적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