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성매매 대금을 폭력으로 다시 되찾으면 강도죄에 해당하는 지를 두고 법정이 달아올랐다.
19일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윤종구)는 강도상해 등 혐의로 기소된 윤모 씨(22·여) 등 3명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했다. 법원은 강도상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성매매 및 성매매 알선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했다. 18일 오전 11시에 시작한 재판은 '빼앗긴 돈이 누구의 소유인지' 등 쟁점을 두고 검사와 변호인이 다투며 오후 9시까지 계속됐지만 결론이 나지 않아 다음날인 19일 오후 7시까지 이어졌다.
윤 씨는 2월 12일 평소 알고 지내던 김모 씨(29)에게 알선을 부탁해 인터넷 조건만남 사이트를 통해 A 씨(32)를 만났다. 둘은 서울 성동구 도선동의 한 모텔에서 선불로 34만 원을 주고받은 뒤 한 차례 성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관계가 끝나자 A 씨의 태도가 돌변했다. A 씨가 험상궂은 얼굴로 "현금이 필요하다. 도로 달라"고 하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겠다고 판단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3만 원을 합쳐 37만 원을 되돌려줬다. 법원은 '성매매는 불법이지만 성매매 대가는 여성 소유'라는 판례를 인정하고 있다. 윤 씨는 김 씨와 송모 씨(29)에게 "도와 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한 달음에 달려온 김 씨와 송 씨는 모텔을 나서려던 A 씨를 주차장에서 때려 눕혀 전치 2주의 부상을 입혔다. 상황이 종료된 뒤 주차장으로 내려온 윤 씨는 의식이 멍한 상태에서 앉아 있는 A 씨의 주머니에서 37만 원을 빼 집으로 향했다.
이들은 강도상해와 성매매 및 성매매 알선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윤 씨가 A 씨를 직접 때리지는 않았지만 김 씨와 송 씨와 공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윤 씨에게도 강도상해 혐의를 적용했다. A 씨는 이 재판이 열리기 전 공갈 및 성매매 혐의로 약식 기소돼 벌금 290만 원을 선고받았다.
가장 치열한 쟁점은 윤 씨가 돈을 다시 가져갔을 당시 37만 원을 누구의 소유로 볼 지였다. 형법상 강도는 '타인의 재물'을 강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돈이 윤 씨 본인의 소유였다고 본다면 강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검찰은 '다른 물건과 달리 돈은 갖고 있는 사람에게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법리를 이용해 "비록 공갈로 얻은 돈이긴 하지만 사건 당시 37만 원은 A 씨가 실질적으로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윤 씨가 A 씨의 돈을 빼앗은 것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A 씨가 돈을 빼앗아간 뒤 (실질적으로 소유하기 전에) 곧바로 되찾은 것이기 때문에 37만 원의 소유권은 여전히 윤 씨에게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검사와 변호인은 피고인들이 강도를 공모했는지를 두고도 부딪쳤다. A 씨를 폭행한 것은 김 씨와 송 씨였고 37만 원을 가져간 것은 윤 씨였으므로 이들 셋이 공모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강도가 아닌 상해죄와 절도죄만 성립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상해와 절도에 대한 처벌은 강도상해 처벌보다 가볍다.
검찰의 입장은 윤 씨가 '포주' 역할을 한 두 남자에게 "돈을 빼앗겼다"며 전화를 한 것 자체가 돈을 돌려받아 달라는 주문이었기 때문에 공모가 성립한다는 것이었다. 법원은 배심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암묵적인 공모도 범죄 모의'라는 대법원 판례를 스크린에 띄웠다. "김 씨가 '돈을 왜 내놓지 않느냐'고 말한 뒤 때렸다"는 A 씨의 증언도 검사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윤 씨의 변호를 맡은 송종선 변호사는 "윤 씨가 두 남성에게 '돈을 돌려받아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으므로 공모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방어했다. 윤 씨는 김 씨와 송 씨가 A 씨를 때릴 것이라고 예견하지 못했고 집에 갈 차비가 없어 A 씨의 주머니에서 돈을 뺐을 뿐 '타인의 돈을 빼앗는다'는 인식이 전혀 없었다는 논리였다.
양측의 논리가 충돌하자 배심원과 방청객들도 헷갈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방청객에 앉아있던 이화여대 로스쿨 재학생 김묘진 씨(26·여)는 "재판이 진행될수록 누구의 말이 맞는지 아리송하다"고 말했다. 재판에 그림자배심원(재판 과정을 모두 지켜본 뒤 유무죄 및 형량을 정하지만 재판 결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배심원)으로 참여한 직장인 이연주 씨(38·여)는 "법리가 치열하게 충돌했지만 강도상해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피고 측에 기운 모습을 보였다.
양쪽의 공방이 계속되면서 19일 오후 2시까지로 계획됐던 재판은 7시가 돼서야 끝났다. 배심원과 법원은 피고인들의 강도상해 혐의에 무죄 판결을 내렸다. 37만 원은 사건 당시 윤 씨 본인의 돈이었다고 봐야하기 때문에 강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성매매 혐의는 유죄로 인정해 윤 씨에게 징역 3개월에 집행유예 1년 및 보호관찰 1년을 선고했다. 재판장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윤 씨가 성매매에 다시 손대지 않으려면 국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배심원 의견을 존중했다"며 보호관찰 선고 이유를 밝혔다. 김 씨와 송 씨의 성매매 알선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판결이 나오자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윤 씨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김 씨는 "국민이 주신 자숙의 기회를 저버리지 않고 반성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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