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 총공격 제보’로 간첩누명 재미교포 62년만에 재심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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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0일 03시 00분


홍윤희 씨 “명예회복 기회”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북한군의 총공격 계획을 국군에 제보했는데도 오히려 간첩으로 몰려 5년간 복역한 재미교포 홍윤희 씨(82·사진)가 62년 만에 재심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원범)는 홍 씨가 1950년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부산중앙계엄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사건에 대해 “유죄 부분에 관해 재심을 개시한다”고 7일 결정했다. 재판부는 홍 씨가 입수한 미국 국방부의 ‘홍의 정보(The Hong's Information)’라는 문건에 대해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해 재심 사유가 된다”고 설명했다.

홍 씨는 20세였던 1950년 6월 보병학교 간부 후보생으로 입교하기 위해 잠시 서울 육군본부 감찰실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6·25전쟁이 터져서 홍 씨는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중구 신당동에 있던 고향 친구 집에 숨어들었다. 하지만 그 친구가 공산당원이어서 어쩔 수 없이 그해 7월 의용군에 입대했다. 나중에 탈출할 생각으로 들어간 의용군에서 홍 씨는 ‘깜짝 놀랄’ 정보를 얻는다. 인민군이 9월에 총공격을 펼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홍 씨는 9월 1일 탈출을 해서 국군에 귀순했다.

홍 씨는 총공격 계획을 국군에 제보한 뒤 유엔군사령부에서 장시간 브리핑까지 했다. 실제로 북한은 9월에 낙동강 전선에서 총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홍 씨는 9월 11일 부산에서 갑자기 간첩 혐의로 헌병에 연행됐다. 이후 “인민군이 서울에 침입할 당시 후퇴명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군에서 이탈해 국군과 교전을 벌였다”는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재선고와 감형을 통해 1955년 출소할 수 있었다.

홍 씨는 “이 사건은 나 개인의 명예회복을 넘어선 역사적 사건”이라며 “재심이 빨리 개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홍윤희#북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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