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입은 신사’ 어디 숨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3일 03시 00분


■ 캐주얼 차림 男직장인 57%… 2년째 정장 앞질러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는 고은산 씨(29)는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예년보다 일찍 찾아오자 파란색 계열의 셔츠와 발목을 드러내는 9분 바지를 입고 회사에 간다. 가방은 IT 기기를 넣고 다니기 편한 배낭을 멘다.

한국인의 옷차림이 가벼워지고 있다. 아웃도어 열풍으로 등산복을 일상복처럼 입는 직장인이 많다. 여성용 정장 슈트는 ‘희귀 패션’이 됐다. 특히 사무직 직장인을 가리키는 관용어인 ‘넥타이 부대’ ‘화이트 칼라’가 무색할 정도다. 일부 회사원 사이에서는 “정장을 입는 사람은 면접 보는 취업준비생과 임원, 은행원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 줄어드는 ‘넥타이 부대’

삼성패션연구소는 1997년부터 매년 5월 서울시청 앞, 영등포구 여의도동, 강남구 삼성동 등 오피스 밀집지역의 남성 1500∼2000명의 패션을 분석해 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까지는 정장 착용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장과 캐주얼(비즈니스 캐주얼 포함)의 비중이 ‘7 대 3’ 안팎으로 꾸준히 유지돼 왔다.

하지만 일본의 ‘쿨비즈 룩’이 상륙하고,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된 2005년 이후 정장과 캐주얼 착용 비중의 격차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조사가 시작된 지 14년 만에 처음으로 캐주얼 비중이 정장을 제쳤다. 올해에는 5월 10일 오전 8시∼9시 반에 남성 직장인 1931명을 조사해 보니 캐주얼(56.6%), 정장(43.4%)의 격차가 13.2%포인트로 더 크게 벌어졌다.

실제로 롯데백화점에서 올해 1∼5월 신사복 브랜드 매출은 2% 줄어들었지만 캐주얼이 많은 트렌디 브랜드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6% 증가했다. IT 기기 액세서리 브랜드인 ‘인케이스’에서 올해 1∼4월 배낭을 산 고객 가운데 30∼35세가 41.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 이른 여름이 캐주얼화 속도 올려

직장인들이 본격적으로 넥타이를 풀기 시작한 것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캐주얼이나 복장 자율화가 시행되면서부터다. 구글, 애플 등 IT 기업이 혁신의 롤모델로 떠오르고, ‘캐주얼=창의적 문화’라는 개념이 생겼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현재 물이 빠지고 찢어진 디자인만 아니면 청바지도 허용하고 있다. 정희원 신세계 대리는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스티브 잡스처럼 자유롭게 옷을 입고 성과를 내는 게 더 중요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박정현 연구원은 “이상고온, 실용성 중시 트렌드, 주5일 근무제, 젊어 보이려는 욕구 등이 남녀 직장인을 포함한 전 국민의 옷차림을 가볍고 캐주얼화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양복#캐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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