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퀴의 드림로드]홍홍홍∼ ‘두 바퀴 아저씨’랑 쌩쌩 달리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6일 03시 00분


방송인 이홍렬 씨-어린이재단, 남수단에 자전거 200대 선물

16일 남수단 보르초등학교 학생들과 이홍렬 씨(앞)가 새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공
16일 남수단 보르초등학교 학생들과 이홍렬 씨(앞)가 새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공
모세스 마피올 군(14)은 열흘 전부터 반짝이는 새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닌다. 매일 4시간을 흙발로 걸어야 했던 왕복 8km의 비포장 등굣길을 동생을 태우고 씽씽 달려간다. 폭우가 내린 뒤 곳곳에 생긴 물웅덩이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자전거를 선물한 ‘키다리 아저씨’의 모습을 매일 상상했다.

“우리 ‘딩카’족 어른들처럼 키가 아주 큰 분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저씨는 키보다 마음이 훨씬 큰 분이었네요. 매일 자전거를 타면서 ‘미스터 리’ 아저씨를 생각할 거예요.”

아프리카 남수단 종글레이 주 말렉초등학교 4학년인 마피올 군은 16일 키다리 아저씨와 처음 만났다. 부족 간 내전과 풍토병으로 부모를 잃은 지구 반대편 고아 소년에게 자전거를 선물한 주인공은 방송인 이홍렬 씨(58). 15년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 씨는 올해 동아일보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공동 기획으로 제3세계 빈곤 아동에게 자전거를 선물하는 ‘두 바퀴의 드림로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 씨는 지난달 5일부터 한 달간 부산에서 서울까지 총 610km를 걸으며 기금을 모았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후원이 이어져 당초 목표였던 1억 원을 훌쩍 넘긴 3억1148만 원(자전거 2595대분)을 모금했다.

“오래 걸으려면 ‘발 관리’가 가장 중요해요. 1시간마다 양말을 벗고 파우더를 뿌리면서 걸었죠. 참 힘들었는데 이곳 아이들의 상처투성이 맨발에 비하면 제 발은 ‘호강’한 셈이더군요. 아이들이 꿈을 향해 뛸 수 있게 더 많은 사람들이 ‘신발’이 돼줬으면 해요.”

어린이재단은 15일 남수단 종글레이 주 보르초등학교에서 후원자들의 기금으로 마련한 자전거 200대를 인근 지역 4개 초등학교와 전쟁고아 임시 보호시설에 전달했다. 자전거 크기와 모양은 제각각이었지만 이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에는 한결같은 기쁨이 가득했다.

○“마을 사람들 구하는 의사가 될래요”

마피올 군은 매일 오전 6시 차 한 잔으로 끼니를 대신하고 학교로 향한다. 말라리아와 황열에 시달리는 마을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되는 게 꿈이다. 흙 움막에서 생활하며 텃밭에서 수확한 땅콩 반 컵으로 하루를 때우는 형편에 빈속으로 햇볕 아래를 걷다 여러 번 쓰러졌지만 수업은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그 덕에 지난 학기 시험에서는 반 학생 48명 중 3등을 했다. 뾰족한 자갈과 물웅덩이로 뒤덮인 등굣길에는 이따금 딩카족과 사이가 나쁜 ‘물레’족 남성들이 나타나 아이들을 납치하기도 한다. 마피올 군은 “자전거 덕에 동생과 함께 안전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숲에서 불쏘시개를 꺾어 학비를 대는 이모를 위해 집안일에도 나섰다. “염소에게 풀을 먹이고 땅콩 밭을 돌본 뒤에도 수업 내용을 복습할 시간이 남는다”며 활짝 웃는다.

○내전으로 인한 상처 여전


지난해 7월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남수단은 오랜 내전의 상처와 빈곤으로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39년간 이어진 내전으로 25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500만 명이 피란길로 내몰렸다. 도로, 학교, 병원 등 사회기반 시설은 대부분 파괴됐다. 독립 1년을 맞았지만 석유 매장이 집중된 북쪽 국경에서는 수단과의 무력 충돌이 계속되고 가축을 먹일 목초지와 우물을 둘러싼 국내 부족 간 유혈충돌도 빈번하다.

탭 마니앙 군(13)의 동생과 부모도 지난해 부족 간 갈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딩카족의 소 떼를 노린 이웃 부족이 새벽을 틈타 마을을 덮쳐 3000여 명이 죽고 173명이 고아가 됐다. 어린이재단이 지원하는 보르지역 보육원에서 기자와 만난 마니앙 군은 또렷한 억양의 영어로 “I want to learn(공부하고 싶어요)”이라고 말했다.

쿠올 마니앙 종글레이 주지사는 “목축 중심의 경제구조를 개편하려면 교육시설과 학비 지원이 시급하다”며 “학교가 멀어 공부를 포기하는 아이들에게 자전거는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말했다. 권기정 어린이재단 남수단 사업소장은 “전쟁 위험으로 생필품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난민들도 계속 유입되고 있어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어린이재단은 현재 남수단 지역 개발 사업을 위해 후원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또 9월부터 남수단 아동과 후원자를 일대일로 잇는 결연 사업도 시작할 계획이다. 이 씨는 “‘나를 절대 잊지 말아 달라’는 마피올 군의 당부에 가슴이 찡했다”며 “결연 사업이 시작되면 남수단 후원자 1호로 꼭 등록하겠다”고 말했다.

보르(남수단)=고현국 기자 m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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