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달에 기껏 잔디 새로 깔았는데 가뭄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6일 17시 44분


윤달을 맞아 묘를 옮기며 새로 깐 잔디들이 가뭄에 말라 죽어가고 있다. 윤달 매출을 한껏 올렸던 이장 업체들은 104년만의 가뭄을 만나 "떼를 다시 입혀 달라"는 주문이 쇄도하며 때 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4월 21일 시작해 지난달 20일까지 이어진 윤달 기간에 많은 유족들이 묘를 옮기며 잔디를 새로 깔았다. 윤달에 이장하면 탈이 없다는 속설 때문이다. 경기 고양시 대자동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올해 4, 5월 두 달간 처리한 이장 건수는 236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처리한 187건의 12배를 넘었다. 평소 많아야 한 달 묘 1, 2기를 이장하던 업체들에도 이 기간에는 손이 모자라 일을 못 받을 정도로 매일 주문이 밀려들었다.

윤달이 끝나면 일감도 떨어져야 정상이지만 업체들은 아직도 많은 주문을 받고 있다. 기상 관측사상 최악의 가뭄이 찾아오면서 모처럼 새로 깐 잔디가 말라 죽고 있기 때문이다. 가뭄이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이미 자리를 잡았던 잔디까지 뿌리가 죽어 이장 및 조경업체는 때 아닌 특수를 맞이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경기 안산시에서 이장 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씨(53)는 평상시보다 두 배 이상 밀려들어오는 주문에 일손이 부족할 지경이다. 주로 "묘를 옮기면서 새로 깐 잔디들이 누렇게 죽어 떼를 다시 입혀 달라"는 요청이다. 김 씨는 "어차피 지금 잔디를 깔아도 금방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장마가 시작되면 밀린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잔디는 가뭄에 강한 식물이지만 뿌리를 내리기 전까지는 '물 속에서 자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생육에 물이 많이 필요하다. 특히 잔디를 새로 입히면 흙 속에 공기가 많아 잔디 뿌리가 마르기 쉽다. 김성균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는 "가뭄이 오래 지속돼 이미 뿌리를 내린 잔디들도 괴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장한 분골을 나무뿌리 주변에 묻는 수목장도 가뭄의 영향을 받는다. 경기 김포시에서 수목장 업체를 운영하는 박모 씨(48)는 장례에 쓰기 위해 새로 심어 둔 삼나무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죽어 골치를 앓고 있다. 박 씨는 "'윤달에 수목장을 치른 나무가 가뭄에 죽지 않았냐'는 문의가 여러 건 들어온다"고 말했다.

공원묘지에서는 잔디 관리를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시립승화원은 오전 오후 각각 2차례씩 살수차와 트랙터를 동원해 잔디가 말라죽는 것을 막고 있다. 물이 충분하지 않아 봉분만 간신히 적시는 실정이다. 예산군 공공시설사업소도 최근 조성한 200여 기를 포함해 전체 4700여 기에 이르는 봉분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물을 뿌렸지만 최근 물 부족 탓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사업소 관계자는 "장마가 빨리 시작돼야 잔디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장마 전선은 29일 제주와 충청 지방을 지나 30일 수도권까지 올라올 전망이지만 비를 얼마나 뿌릴지는 28일이 돼야 예측할 수 있다. 김태수 기상청 통보관은 "장마 전선이 짧게 비 소식을 전한 뒤 다시 남쪽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부터 이달 24일까지 서울지역에 내린 비의 양은 10.6㎜로 예년 같은 기간 평균(203.5㎜)의 5.2%에 불과하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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