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여론 왜곡하는 뉴미디어 스나이퍼]<上> 중견-중소기업, 약자가 더 서럽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7일 03시 00분


《 인터넷과 모바일 등 뉴미디어 공간에서 왜곡 과장된 내용을 집중적으로 퍼뜨려 금품을 챙기는 사이비 언론, 악의적 블로거 등 ‘뉴미디어 스나이퍼(저격수)’가 한국 인터넷 여론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네이버 다음 등 몇몇 포털 사이트가 독점하는 한국의 인터넷 환경에서 포털을 숙주(宿主)로 활동하는 뉴미디어 스나이퍼들이 방어력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을 먹잇감으로 삼고 있다. 인터넷 여론 시장을 왜곡하는 뉴미디어 스나이퍼의 실태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
식품업체 A사의 홍보팀장은 26일 ‘뉴미디어 스나이퍼’들의 행태를 취재하는 기자에게 “농담이지만 그 사람들을 보면서 ‘회사를 그만둬도 그들을 따라하면 굶어죽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대단한 자본이나 기술도 필요 없고, ‘배포’만 있으면 기업을 협박해 수백만 원 버는 건 일도 아니라는 얘기였다.

○ ‘위험은 적고 소득은 짭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10년 7∼8월 회원사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봐도 뉴미디어 스나이퍼의 활동은 ‘저(低)위험, 고(高)소득’ 수익모델임을 알 수 있다. 응답 기업 중 인터넷신문이 기사 거래를 빌미로 광고나 협찬을 요구했을 때 이를 사법 당국에 신고한다는 곳은 겨우 3.0%뿐이었다. ‘광고·협찬으로 무마한다’가 25.7%, ‘요구자에게 개인적으로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해 무마한다’가 3.8%였다.

대부분의 기업은 전화나 문서로 설득하거나(40.9%) 별 대응을 안 한다(26.2%)고 답변했다. 뉴미디어 스나이퍼로서는 손해 볼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인터넷언론이 포털에 제휴하려면 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매체를 차리는 것 자체는 거의 돈도 들지 않는다.

한국언론재단의 ‘2011 신문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인터넷신문 1064곳 중 2010년 연간 매출액 1억 원 미만이 687곳이었으며, 직원 수 10명 미만이 900곳이었다. 1∼4명도 601곳이나 됐다. 설문에 응한 업체 중 자체 생산하는 기사가 1주일에 100건 이하인 곳이 전체의 79.2%, 발행인이 직접 취재까지 하는 곳이 70.8%였다.

한국광고주협회 측은 “인터넷신문은 취재·편집 인력 3명만 있으면 설립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아 한두 명으로 운영하는 곳도 많다”고 밝혔다. 협회 관계자는 “6개월 단위로 인턴기자를 채용했다가 계약 해지를 반복하며 국고보조금을 챙기는 곳도 있다”고 전했다.

아예 혼자서 매체를 운영하는 곳도 많다. 식품회사 B사 관계자는 “한 사람이 여러 이름으로 사장, 광고국장, 기자 등 ‘1인 다역’을 하는 매체도 봤다”며 혀를 내둘렀다. 기사를 보고 기자를 찾아 전화를 걸면 “그 기자는 나갔다”며 자기를 광고국장이라고 소개하는 식이라는 얘기다.

○ 중소·중견기업-식품·제약·건설 타깃

뉴미디어 스나이퍼들의 표적이 되기 쉬운 곳은 소비자 여론을 신경 쓸 정도의 규모이지만 재계 순위에서는 밀리는 중견기업이나 소비재 중소기업이다. 특히 여론에 민감한 식품업과 제약업, 주택건설업이 뉴미디어 스나이퍼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고 있다.

대기업은 수가 많지 않은 데다 공식 블로그, 트위터 등 해당 기업들이 가진 공식 반론창구의 영향력도 강하고, 다른 언론의 확인취재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에 중견·중소기업을 더욱 ‘만만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주택건설사 C사 관계자는 “준공을 앞두고 뉴미디어 스나이퍼들의 공격이 많아진다”며 “입주 예정자들이 이런저런 혜택을 받기 위해 제보를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이비 언론매체들은 큰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건당 300만∼500만 원 수준을 요구하다 보니 타협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중견 제조업체인 D사의 홍보담당자는 최근 한 인터넷 매체의 연락을 받았다. 자신을 ‘기자’라고 소개한 사람은 “당신네 회사와 협력업체의 관계를 문제 삼는 연재물을 준비하고 있다”며 “(우리) 회사 간부들과 얘기해 보라”고 일방적으로 얘기했다. 이 홍보담당자는 “해당 매체의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보니 대기업을 시작으로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수십 차례 연재했더라”며 “큰 기업 다 돌고 중견기업까지 손을 뻗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식품업계 홍보담당자들은 “뉴미디어 스나이퍼들에게 우리는 그야말로 ‘을 중의 을’”이라고 말한다. 별다른 증거 없이도 골탕 먹이기가 쉬울 뿐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블로그나 인터넷 게시판에 악성 글을 올려도 파급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먹고 났더니 배탈이 나 병원에 갔다 왔다’고 하는 것이다. 병원 영수증을 들이밀며 “이게 그때 먹은 과자, 음료수”라고 주장하며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하면 기업으로서는 확인할 도리가 없다. 빙과업체 E사 관계자는 “애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탈이 났는데 치료비가 8만 원 나왔다며 영수증을 들이대고 ‘아이가 학교를 못 가고 나도 직장을 못 갔으니 정신적 위자료로 수백만 원을 내라’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포장을 뜯었는데 안에 개별 포장된 과자의 개수가 모자란다고 항의하거나 아이스크림을 녹였다 다시 얼리고 이물질을 넣어도 해당 기업에선 반박하기 어렵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아예 뻔뻔하게 끝까지 이물질을 안 보여주고 흐릿한 사진만으로 협박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 수법 전수하고 분업하기도

이런 일이 계속되는 것은 뉴미디어 스나이퍼들이 나름대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약업체 F사의 한 담당자는 “한 인터넷신문에서 일하던 기자가 독립해 비슷한 매체를 창간하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기업을 압박하는 일도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약사는 지난해 한 매체의 기사 협박에 순순히 광고비를 줬다가 비슷한 매체 수십 곳이 같은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며 똑같은 요구를 해오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이 회사 홍보담당자는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과장·왜곡 보도를 하는 언론 네트워크가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한 제과업체 관계자는 “사고 사례를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어 관리하다 보면 서로 이웃이거나 혈연관계인 사람들이 회사를 돌아가며 뉴미디어 스나이퍼로 활동하는 경우도 본다”며 “친한 사람에게 수법을 전수하고 분업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채널A 영상] 사이비 언론에 시달린 기업들 ‘우리도 언론 만든다’

:: 뉴미디어 스나이퍼 (New-media sniper) ::

뉴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사이비언론이나 블로그 등이 특정 기업을 공격하며 여론을 주도하는 ‘스나이퍼(저격수) 공격’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용어. 미국 경영전문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0년 12월호에 실린 ‘평판 전쟁(Reputa-tion Warfare)’ 논문에 소개된 개념이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사이비 언론#스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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