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6시 반 서울 미림여고 교내 독서실. 이 학교 2학년 이현무 양(16)이 1학기 기말고사 공부를 하려 자리에 앉았다. 직접 만든 영어단어장을 훑어보며 ‘워밍업’을 한 뒤, 본격적인 시험공부에 앞서 그만의 비장의 무기를 꺼내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파란색과 노란색의 스톱워치.
스톱워치마다 용도가 다르다. 파란색은 전체 공부시간을 기록하는 데 활용한다. 화장실에 가거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는 이 스톱워치를 일시정지 시킨다. 이를 통해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한 시간을 정확히 파악한다. 노란색 스톱워치는 과목별, 단원별 학습목표시간을 지키는지를 확인하는 데 사용한다. 효율적인 학습시간 관리를 위해서다.
이 양은 공부하기로 계획한 경제노트를 펼친 뒤, 두 스톱워치의 시작버튼을 각각 눌렀다. 세부 목표시간은 경제노트 2페이지당 5분. 이 양은 계속해서 노란색 스톱워치 시간을 확인하고 초기화하기를 반복하면서 공부시간을 점검했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오후 10시에 이 양은 파란색 스톱워치에 기록된 시간을 확인했다.
‘2시간 40분. 야간자율학습 3시간 반 중에서 50분은 뭘 했지? 생물 수행평가하고, 친구랑 수다도 떨고, 화장실에도 몇 번 다녀왔고…. 내일은 좀더 집중해서 공부해야지!’
이 양은 마음을 다잡으며 학교 독서실을 나섰다.
○ 꼼꼼한 학습전략, 한계에 부딪히다
그런데 궁금하다. 이 양은 어떤 계기로 ‘스톱워치 공부법’을 활용하게 됐을까?
고1 때까지 이 양은 공부에 있어서 ‘꼼꼼한 노력파’였다. 교과서나 문제집을 보다가 모르는 내용이 생기면 스스로 이해될 때까지 몇 시간이고 반복해 공부했다. 비록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그렇게 해야만 안심할 수 있었다.
중학교 때까지 이런 공부법은 효과가 있었다. 중학 3년 내내 중간·기말고사에서 전교 10등 안팎의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이러한 학습전략은 한계에 부딪혔다. 공부할 분량이 중학교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많아진 데다가 동아리활동, 수행평가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공부에 소홀했던 건 아니었어요. 주말에도 오전 일찍 학교 독서실에 나와 12시간 이상 공부했어요. 하지만 공부하는 속도가 많이 느렸어요. 제가 시험범위를 한 번 공부하는 동안 친구들은 여러 번 반복해 보더라고요.”
이 양의 고1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은 전교 100등 아래, 6과목 평균 73.6점. 충격이었다. 울지 않으려 노력해도 눈물이 흘렀다. 굳은 결심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공부습관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성적도 고1 내내 제자리걸음이었다.
○ 노력파 여학생, ‘효율성’ 달고 날아오르다
올해 2월. 오르지 않는 성적을 고민하던 이 양에게 어머니가 다가와 이야기를 건넸다.
“TV에서 봤는데 스톱워치를 활용해서 공부하는 시간을 기록하면 시간관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더라. 한 번 활용해보는 게 어떻겠니?”
이 양은 파란색 스톱워치를 장만해 실제 공부한 시간을 측정했다. 오전부터 10시간 남짓 책상 앞에 앉아있었지만 스톱워치에 기록된 시간은 7시간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 공부하지 않고 낭비하는 시간이 적지 않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후 꾸준히 ‘하루 동안 실제 공부시간’을 기록하고 반성했다. 더 많은 시간을 오로지 공부에만 투자하기 위해 노력했다.
더욱 세밀한 시간관리가 필요했다. 이 양은 노란색 스톱워치를 하나 더 장만했다. 이후 ‘수학 1챕터에 30분’, ‘국어 한 지문에 10분’처럼 ‘세부 목표시간’을 정했다. 공부하는 내내 노란색 스톱워치를 확인하며 목표시간을 지키는지 점검했다. 긴장감이 생기면서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결과는 금세 나타났다. 고2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이 전교 3등(주요과목 문학, 영어, 수학 기준)으로 껑충 뛰어오른 것. 7개 전 과목 평균점수도 88점으로 고1 1학기 중간고사 때보다 10점 이상 상승했다.
“스톱워치는 저에게 성적 향상의 기회와 희망을 준 고마운 친구예요(웃음).”
이 양의 꿈은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생방송 시작 전 카운트다운을 듣는 그날까지 그의 스톱워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글·사진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이영신 인턴기자 ly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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