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권모 씨(30)는 지난달 29일 오후 11시 50분경 서울 강남구에서 회식을 끝내고 금천구 가산동으로 가는 택시를 잡는 데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직장인들의 회식이 몰린 금요일인 데다 택시 잡기 힘든 시간대라 다음 날 오전 1시쯤 가까스로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권 씨는 피곤이 몰려와 택시에서 쪽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집까지 가는 내내 한숨도 잘 수 없었다. 택시운전사가 길을 몰라 집까지 가는 30분 내내 길을 안내해야 했다. 디지털단지오거리로 가달라는 권 씨 말에 택시운전사는 “그게 어디냐”고 되물었다. 운전사는 “손님 스마트폰으로 길을 검색해서 알려주시면 좋겠다”는 황당한 부탁까지 했다.
‘길 모르는 택시운전사’가 늘고 있어 불편을 겪는 사람이 많다. 2일 서울시에 따르면 택시 민원은 매년 크게 늘고 있다. 전체 교통민원 가운데 택시 민원은 2006년 46.5%에서 지난해 73.2%로 증가했다. 이 중에서 운전사가 길을 몰라 불편함을 겪었을 때 접수하는 ‘불친절’ 항목은 지난해 28%로 택시 민원 중 1위를 차지한 ‘승차거부’(29.4%)에 육박한다.
○ 택시운전사 자격증 따기 너무 쉬워
길 모르는 택시운전사가 느는 것은 자격시험의 변별력 부족이 원인으로 꼽힌다. 자격시험은 지역지리 도로교통법 운송서비스 등 80문항인데 60점 이상이면 합격이다. 법인택시 경력 1년인 서모 씨(32)는 “운전면허만 있으면 누구나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 기출 문제 중 지리 문제는 ‘한국종합무역센터에 없는 것은? (정답은 ○○백화점)’처럼 응시자가 실제 가는 길을 몰라도 풀 수 있는 문제가 많았다. ‘운행 시 가시거리가 길어지는 경우는? ①야간운행 시 ②짐을 싣지 않았을 때 ③안개가 끼었을 때 ④음주운전’처럼 상식 밖의 문제도 있었다. 이 문제의 정답은 2번. 운전대 위나 차 뒤에 짐을 실으면 잘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시험에 합격한 뒤 받는 신규 채용자 교육에도 지리나 지형과 관련된 내용은 없다.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교육은 예절교육과 안전교육 위주로 진행된다.
○ 택시는 넘치고 운전사는 없고
택시회사는 길을 잘 아는 운전사를 골라서 뽑을 수가 없다. 운전사가 항상 부족해 지원자의 실력이 모자라도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 택시회사 인사담당자는 “교통사고 이력이나 전과만 없으면 일단 채용하는 게 지상과제”라고 말했다.
시는 부족한 택시운전사 수를 약 7000명으로 보고 있다. 2만2000여 대의 택시를 2교대로 운전하려면 약 4만7500명이 필요한데 전체 운전사는 4만567명에 불과하다. 운전사는 부족한데 택시를 운전하려는 사람은 줄고 있다. 서울지역 택시운전사자격시험 응시자는 2007년 1만4010명인데 2011년에는 1만609명으로 5년 만에 23.3%가 줄었다.
오랫동안 택시를 몰면서 길을 익힐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매년 전체 법인택시 운전사 중 절반이 퇴직해 경험이 쌓일 틈이 없다. 지난해엔 4만907명 중 절반이 넘는 2만1000명이 퇴직했다. 재취업자를 감안하더라도 법인택시 운전사 5, 6명당 1명은 경력 1년 미만인 셈이다.
시는 수요에 비해 택시 수가 지나치게 많은 게 원인이라고 보고 지난해 7월 ‘택시개혁 종합대책’을 마련했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시 관계자는 “법인택시 문제는 구조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법인택시 회사의 반발 등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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