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2시 50분경 광주 남구청 앞 도로. 앞을 분간하기도 힘들 정도로 쏟아지는 폭우 속을 달리던 금남59번 시내버스가 고갯길 가장자리에 멈췄다. 승강장이 아닌 곳에서 버스가 멈추자 승객 10여 명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시내버스 운전사 최석준 씨(45)는 승객들에게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수레 좀 밀어드리고 올게요”라며 우산도 없이 반대편 차로로 뛰어갔다. 승객들은 그때서야 70대 할머니가 폐지를 실은 수레를 힘겹게 끌고 있는 것을 봤다. 할머니 키보다 높은 폐지 수레는 100m가 넘는 언덕길을 좀체 오르지 못했다. 최 씨는 장대비를 맞으며 수레를 밀기 시작했다. 여의치 않자 대신 수레를 끌었다. 최 씨와 할머니의 ‘아름다운 빗속 동행’을 지켜본 승객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최 씨는 언덕 꼭대기에서 할머니에게 수레를 건넨 뒤 숨을 헉헉거리며 다시 버스에 올랐다. “기다려줘서 고맙습니다.” 최 씨가 재차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자 한 승객이 젖은 옷을 닦으라며 손수건을 내밀었다. 도움을 받았던 할머니는 얼마나 고마웠는지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 사연은 당시 버스에 탔던 한 대학생이 광주시청 홈페이지 ‘시장에게 바란다’ 코너에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대학생은 “기회가 된다면 가족 모두가 그 기사님이 운전하는 버스를 타보고 싶다”고 적었다. 최 씨는 “할머니가 언덕길을 오르지 못해 그저 힘을 보탠 것일 뿐”이라며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착한 운전사’ 최 씨의 선행은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4월부터 3개월간 이 노선에서 일하며 5차례 버스를 멈추고 고갯길을 힘겹게 오르는 노인들의 수레를 끌어줬다.
“차를 세웠다고 눈살을 찌푸리는 분은 한 분도 없었어요. 언젠가 엄마와 함께 탄 유치원생이 ‘기사님 아이스크림 사드세요’라며 1000원짜리 지폐를 주더라고요.”
시내버스 운전사 경력 10년째인 최 씨는 “1일부터 다른 노선에 투입되는데 힘든 고갯길을 오르는 노인들을 도울 수 없게 돼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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