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다니는 여성 차장 L 씨는 지난해 봄 미국 지사로 발령을 받았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둘 수 없어서 두 자녀만 데리고 미국으로 가려고 했다. 난관이 생겼다. 아이들이 다니는 중학교와 초등학교 모두 무단결석으로 처리하겠다고 얘기했다.
L 씨가 “회사 일 때문에 나가는데 왜 유학으로 처리해 주지 않느냐”고 따졌지만 의무교육을 받지 않으면 불법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바쁜 남편에게 아이들을 남겨 둘 수 없어서 L 씨는 결국 두 자녀를 미인정 유학자로 만드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함께 떠났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 시대에 뒤처진 규정 개정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라서 유학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부모가 모두 해외로 나가야 학교장이 의무교육을 면제해 주는 식으로 유학을 인정했다.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3개월간 무단결석으로 처리됐다가 정원 외 학사관리 대상자로 분류된다. 유학기간 만큼 졸업이 유예되는 셈이다.
이는 맞벌이 부부가 급증하고, 특히 해외 파견 여성이 늘어나는 현실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부모 중 한쪽만 외국에 나가면 자녀가 미인정 유학을 떠난다고 간주됐다.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교육과학기술부는 최근 ‘국외 유학에 관한 규정’을 손질했다. 부모 중 한 명만 외국에 나가도 자녀의 유학을 인정해 주기로 했다. 다만 불필요한 조기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막기 위해 단서를 달았다. 공무상 해외 파견, 즉 출국하는 부모가 공무원이나 상사 주재원으로 외국에 파견되는 경우로 제한했다.
교과부는 새 규정을 시도교육청에 보내 6월 12일부터 적용하도록 했다. 이보다 앞서 유학을 갔다가 12일 이후 귀국한 학생 역시 마찬가지여서 외국에서 받은 교육 과정을 인정해주도록 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3학년 때 외국에 나가 2년간 학교를 다니다 귀국하면 전까지는 3학년부터 다시 다니거나 5학년용 학력 인정 시험을 치러야 했다. 앞으로는 그냥 5학년부터 다니면 된다.
○ 홍보 및 결석 처리 문제 남아
규정은 바뀌었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아직 모르는 곳이 많다. 새 규정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직장인 K 씨도 미국 파견을 앞두고 지난주 초등생 두 자녀의 유학을 신청하러 갔다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학교 측이 바뀐 규정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K 씨는 “내가 직접 법령과 규정을 뒤져서 담임에게 알려줬지만 아직도 유학으로 인정해 준다는 확답을 받지 못했다. 교사도 교육 당국이 학교에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 혼선을 느낀다며 답답해했다”고 전했다.
규정이 바뀌기 전에 유학을 떠났던 학생에게는 또 하나의 문제가 남아 있다. 12일 이후 귀국하면 유학으로 인정받기는 하지만 이미 3개월간 무단결석한 기록이 남아 있다. 교과부는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이 기록을 없애 줄지를 더 논의하고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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