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개통부터”… 상습 침수지역 대책은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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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7일 03시 00분


■ KTX 수서역 ‘新유령역’ 우려

고속철도(KTX) 수서역 건설 예정지는 한눈에 봐도 주변보다 낮은 ‘분지형 구조’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과 자곡동 일대의 이 지역은 남쪽으로는 세곡보금자리 주택 건설이 한창 진행 중이고 동쪽으로는 탄천 건너 송파구 문정지구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여 비닐하우스 외에 다른 건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밤고개길과 지하철 3호선 차량기지 사이에 위치한 이 지역은 주변보다 지표면이 3, 4m 낮은 독특한 지형 때문에 장마철만 되면 상습적으로 침수된다.

현재 이곳에 KTX 수서역 건설을 추진 중인 국토해양부와 한국철도시설공단, 서울시는 주변 정비와 개발을 끝내지 못한 채 출발역만 들어서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입장만 내세우고 있다. 그린벨트 해제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대로 역사 건설이 추진되면 주먹구구식 개발로 비판을 받은 KTX 광명역 조성 사업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국토부 “2015년 KTX 개통만 하면 돼”

KTX 수서역 건설사업을 시행하는 국토부와 산하 한국철도시설공단은 2015년 수서∼동탄∼평택 구간의 KTX 개통이 시급하다. ‘개통 시간표’에 맞추기 위해 별다른 주변 정비계획 없이 전체 용지 가운데 일부에만 역사와 선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그린벨트 해제 대신 관리계획 변경만으로 가능한 역사 건설만 서두르는 것. 지난해 6월만 해도 조현용 전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이 기자간담회를 열어 “수서역 일대에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수서역세권 개발과 역사 건설을 함께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당시 계획과 달리 역세권 개발은 뒷전으로 밀렸다. 시설공단은 역세권개발사업단을 만들어 전체 용지의 개발계획을 수립했지만 아직까지 그린벨트 해제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구본환 국토부 철도정책관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KTX 개통 시기를 맞추는 것”이라며 “지금 계획처럼 역사만 먼저 만들고 그린벨트 해제 논의는 나중에 해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침수 우려에 대해서는 “특별히 보고 받은 바 없다”고만 말했다.

○ 서울시 “역세권 대형 개발은 반대”

4일 내려다본 서울 강남구 자곡동 KTX 수서역 건설 예정지. 이 지역은 주변보다 3, 4m
낮은 분지형이라 장마철이면 상습적으로 침수된다. 아래 사진은 지난해 폭우로 침수된
수서역 건설 예정지.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강남구 제공
4일 내려다본 서울 강남구 자곡동 KTX 수서역 건설 예정지. 이 지역은 주변보다 3, 4m 낮은 분지형이라 장마철이면 상습적으로 침수된다. 아래 사진은 지난해 폭우로 침수된 수서역 건설 예정지.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강남구 제공
역사가 건설되는 수서동 일대 11만8133m²(약 3만5730평)를 비롯한 전체 용지 38만6390m²는 모두 그린벨트로 묶여 있다. 여기에 역사를 건설하려면 이 용지에 철도시설이 들어설 수 있도록 서울시가 그린벨트 관리계획을 변경해 줘야 한다. 개발계획과 그린벨트 관리계획 변경안을 심의해 통과시켜 줘야 하는 서울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형 개발에 난색을 표하자 ‘수서역 주변 개발은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방침을 바꿨다.

이 때문에 시설공단이 지난달 20일 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제출한 그린벨트 관리계획 변경안만 심의해 그린벨트를 풀지 않고 역사만 건설하는 데는 서울시도 이견이 없다. 문승국 행정2부시장 지시로 5월부터 운영 중인 관련 태스크포스(TF)팀은 주변 지역 개발은 하지 않고 역사만 건설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결국 상습 침수구역인 이 일대에 별다른 대책 없이 수서역을 만들면 ‘관료주의가 낳은 또 다른 실패작’이 될 우려가 있다. 양 옆 지역보다 3, 4m 낮은 곳이라 철도 선로를 지하에 묻더라도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선로가 들어간 부분은 흙을 덮어 올려야 한다. 결국 ‘W’자 모양으로 선로구간이 돌출되는 기형적인 구조로 건설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장마철 비가 많이 와 KTX 선로구간을 중심으로 이 일대 좌우 지역이 모두 물에 잠기면 ‘KTX 수서역이 만든 인공호수’라는 비아냥거림을 피할 수 없다. 하루 17만 명이 오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토부와 시설공단, 서울시 모두 아직까지 뾰족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 광명역의 악몽 되풀이되나


수서역 개발계획은 KTX 광명역 개발계획과 닮았다. 두 곳 모두 건설용지가 그린벨트였고 역사를 먼저 지은 뒤 역세권은 별도의 개발계획을 세워 추진했다. 2004년 4월 건설교통부는 4068억 원을 들여 역사와 인근 시설을 완공하고 광명역을 개통했다. 이후 2008년 말까지 “광명역 일대를 미니 신도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사업은 아직도 지지부진하다. 그린벨트 해제가 예정보다 7개월가량 늦어지며 2007년 2월에야 겨우 용지 조성을 시작했다. 당초 2008년이던 완공 시기는 올해 말로 4년이나 미뤄졌다.

기관들이 그린벨트 해제를 둘러싼 자신들의 주장만 내세우고 있어 결국 수서역은 기형적인 구조의 침수지대에 역사만 들어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이를 막기 위해 서울시가 지난달 20일 열린 도계위에서 “선로를 더 깊게 지하화하라”고 요구했지만 시설공단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이 지역 그린벨트 해제의 필요성을 충분히 논의하지 않은 채 역 건설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향후 개발논리에 밀려 결국 그린벨트가 해제될 수 있지만 진통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KTX 수서역#침수지역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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