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이고 자기 주도적으로 하지 않고 억지로, 워낙 장시간 공부에 매달릴 수밖에 없어서…. 전 가계가 사교육비를 쏟아 붓고 있는 산물이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1등이 아닌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말이다. 어느 자리, 어떤 맥락에서 이런 표현을 썼을까.
그는 PISA에 대한 전문가 세미나에 참석했다. 12일 오전 10시 서울시교육청 9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서울시교육청은 호주 국립교육연구원(ACER) 출신으로 PISA의 출제를 주관하는 로스 터너 전문위원을 초청했다. 그는 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시작된 제12차 국제수학교육대회에 참가하려고 한국을 찾았다.
터너 전문위원은 곽 교육감, 황선준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장, 기초학력업무 담당자 등 20여 명 앞에서 PISA의 역사와 특징을 30분 정도 설명했다. 2015년 시험부터는 학생들이 팀을 이뤄 과제를 수행하는 ‘협업 문제해결 능력(CPS)’ 영역을 추가한다고 안내했다. PISA의 한국 시행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조지민 국제학업성취도연구실장과 홍익대 박경미 교수(수학교육과)도 자리를 함께했다.
시교육청은 PISA에 대해 공부하는 차원에서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공식발표했다. 하지만 시교육청 관계자들은 한국이 우수한 평가를 받은 점을 외국인 전문가 앞에서 문제 삼았다.
▼ 교총 “郭교육감, 국민 교육열-교사들 노력 깎아내렸다” ▼
심성보 서울시교육청 학습부진대책자문위원장(부산교대 윤리교육과 교수)이 먼저 말을 꺼냈다. “PISA 시험 때문에 애들이 생고생을 한다. 수학 잘하는 사람이 세금 포탈이나 도둑질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방법은 없는 건가. 지적 탁월성이 도덕적 탁월성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은 고민하시지 않나.”
이에 대해 터너 전문위원은 “한국이 잘하는 것에 한 가지 정답은 없다”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한국의 높은 점수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이어졌다.
“PISA 1등을 진심으로 환영할 수 없는 이유를 오바마는 몰라도 우리는 알고 있다. 많은 분이 성적이 높은 한국의 비결을 궁금해하지만 그 8할은 강요된 누적학습, 사교육비로 뒷받침된 학습시간의 결과라는 게 현실이다.”(곽 교육감)
“PISA가 국가간 비교를 조장한 것 아닌가. (세계 1등을 차지한) 중국 상하이 학생들은 최고로 행복한 것인가. (이런 시험이) 교육 획일화를 위한 기제가 된다고 본다.”(안승문 교육감 정책특별보좌관)
터너 전문위원은 “단순한 비교를 통해서도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언론과 대중이 손쉽게 척도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변호했다. 그는 또 “(PISA 결과를 통해) 공부를 못하는 학생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런 변화를 위한 방향성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대화 내용이 알려지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김동석 대변인은 “사교육의 영향이 없을 수 없겠지만 국민들의 뜨거운 교육열과 현장 교사들의 노력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해 이뤄낸 성과를 너무 폄하했다”고 지적했다. 박경미 교수 역시 “PISA는 실생활에 적용하는 문제를 출제하므로 다른 시험과 달리 학원교육이나 선행학습과는 비교적 무관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세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라고 설명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