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한 아파트. 양복을 말끔히 차려 입은 김모 씨(50)가 계단을 걸어 올라가며 각 가구의 현관문 옆에 설치된 전기계량기를 유심히 살폈다. 그는 전기 사용량이 적어 기계식 전기계량기 원판이 거의 돌지 않거나 천천히 도는 집을 골라 초인종을 눌렀다. 빈집으로 확인되면 잠금장치를 부수고 들어가 현금과 귀금속을 훔쳐 유유히 사라졌다.
이 같은 수법으로 빈집을 파악해 2월부터 23회에 걸쳐 현금과 귀중품 등 1억5000만 원가량을 훔친 김 씨는 그의 동선을 추적해온 경찰에 9일 검거돼 13일 구속됐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과거엔 무작정 초인종을 눌러 빈집을 확인했는데 전기계량기를 미리 확인해 확률을 높였다”고 진술했다.
기계식 전기계량기가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한국전력공사 관계자는 “우리가 어떻게 손쓸 방법은 없다”며 “기계식 전기계량기를 2020년까지 모두 전자식으로 교체할 예정인데 전자식은 전기사용 정보를 복잡한 숫자로 전달하기 때문에 검침원이 아니면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사용되는 전기계량기의 80%는 기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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