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서울시교육감(사진)이 한국의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 성적을 사교육과 선행학습 결과라고 폄하한 데 대해 교육계에서는 PISA의 본질과 특징조차 모르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교과 지식이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읽기, 수학, 과학 능력을 평가하므로 주입식 사교육으로는 점수를 올릴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사교육 효과라면 학생 간 성적 편차가 커야 하는데 시험이 거듭될수록 한국 학생들의 성적은 편차가 작아지면서 올라가는 특성이 나타난다. 지역과 가정환경 변수와의 연관성도 없어서 사교육 효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교육전문가들은 한국 교육에 문제가 없지는 않겠지만 세계적으로 부러워하는 한국의 평가결과를 외국인 전문가 앞에서 깎아내리는 인식 자체가 비교육적이라고 말했다.
○ 실생활과 관련된 문항 많아
PISA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관으로 1998년 시작됐다. 3년마다 읽기, 수학, 과학 영역을 평가한다. 객관성을 위해 표준화된 절차에 따라 참가국이 학생들을 직접 선정한다. 표본이 되는 수험생이 특정 지역에 쏠리지 않도록 전국 단위로 학교를 고른다.
가장 최근의 평가인 PISA 2009에는 65개국에서 47만 명이 참여했다. 한국은 대도시, 중소도시, 읍면에서 157개 학교를 골랐다. 만 15세인 중학교 3학년과 고교 1학년생 4990명이 평가에 응했다.
기출 문제 중 일부는 국가별 시행기관에 공개한다. 한국에서의 평가를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기출문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중학교 공교육을 이수한 학생이라면 사교육이나 선행학습 없이도 풀 수 있는 수준이다.
읽기는 대부분 지문에 답이 포함돼 있다. 글을 독해하는 능력을 평가하자는 취지다. OECD 역시 실생활에 필요한 문해력(literacy)을 본다고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벌이 꿀을 채취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지문을 주고 벌이 왜 춤을 추는지, 꿀이 있는 장소가 멀면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묻는다.
수학은 다양한 상황이나 지도를 주는 문제가 많다. 해외여행을 갈 때 환율을 계산하거나 여러 도시 사이의 최단거리를 짜도록 하는 식이다. 서울 중랑구의 A고 수학교사는 “선행학습이 아닌 사고력이 필요하다. 수학적 내용을 현장의 문제 상황에 적용하느냐를 보니까 중학교 1학년도 사고력만 있다면 쉽게 풀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과학은 지문을 활용해 푸는 문제와 지문 없이 교과지식을 묻는 문제가 섞여 있다. 서울 동작구 B중 과학교사는 “난도가 낮은 편이고 학원에서 주로 배우는 것과 달라서 사교육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 새 방식으로도 한국 학생들이 우수
PISA는 평가 영역을 부정기적으로 추가한다. PISA 2003에서는 문제해결능력, PISA 2009에서는 디지털문해능력 평가를 실시했다. 둘 다 사고력, 추론능력, 종합력을 요구한다. 사교육이 해답을 주기 어렵다.
한국 학생들은 어느 경우에도 성취도가 뛰어났다. PISA 2009의 디지털문해능력 순위는 568점으로 1위였다. 전체 평균(499점) 및 2위(537점·호주)보다 월등히 높다. 이 시험은 수시로 뜨는 컴퓨터 팝업창에서 정보를 찾아 문제를 푸는 식이다.
PISA 2003의 문제해결능력은 범교과적으로 나왔다. 도서관 규칙을 해석해 책을 빌릴 수 있는 기간을 파악하거나, 남녀 학생이 합숙을 할 때 정해진 규칙에 따라 방을 배정하는 생활밀착형 문제다. 여기서도 한국 학생이 1위였다.
PISA 분석 연구에 참여한 한 교육학 박사는 “두 시험은 새롭고 복합적이라서 진보된 시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를 직접 봤다면 사교육으로 성적이 높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곽 교육감이 PISA의 성과를 깎아내렸다는 얘기를 듣고 교사와 학부모들은 ‘전국 꼴찌’인 서울의 학업성취도가 떠올랐다고 비판했다. 서울은 지난해 전국 단위 학업성취도평가에서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의 기초학력 미달비율이 모두 5.0%로 16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가장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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