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 80년대 열악한 군대 환경을 꼬집는 우스개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용돈이 궁한 대학생이 시골에 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군 입대를 하려면 철모와 군복을 사 가야 한다고 합니다.”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시골 노부(老父)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돈을 더 보낼 테니 동생 것까지 넉넉하게 사라”고 했다는 거다.
▷한국군은 그때의 군대가 아니다. 올해 국방 예산은 33조 원이다. 2000년의 약 2.3배다. 철모는 가볍고 방탄 성능이 뛰어난 첨단 소재로 바뀌었다. ‘여름에 덥고 겨울에는 춥다’던 군복은 위장 기능과 활동성이 좋은 첨단 전투복으로 교체되고 있다. “옛날 군대 생활을 할 때 배고파 총 들 힘도 없었다”는 노장층의 회고담은 ‘보릿고개’ 얘기만큼 생경하다. 올해 장병의 하루 1인당 급식단가는 6155원으로 올랐다. 1990년대 병장 ‘연봉’은 10만 원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다달이 받는 월급만 10만8000원이다. 정치권은 4·11총선에서 “사병 월급을 두 배로 올리겠다” “최저 임금을 적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입대한 육군 훈련병 가운데 일부가 운동화를 지급받지 못해 일과 이후에도 군화를 신고 생활하고 있다. 운동화 단가가 올라 계획된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데다 재고가 부족해 벌어진 일이다. 무더운 날씨 속에 운동화 없이 생활하다 보니 무좀이나 습진 증세에 시달린다는 소식이다. 2007년부터 올해 6월까지 군납 식품의 하자가 모두 333건 발생했다. 군대 급식에 압정 개구리 지네 등의 이물질이 섞여 나오는 일이나 성능이 떨어지는 불량 군수품은 장병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입대 전에 선진국 수준의 의식주를 누린 신세대 장병을 군에 적응시키고 동기 부여를 하자면 월급 인상은 물론이고 피복 급식과 생활환경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예산을 아무리 늘리더라도 장병들에게 전달되는 복지 전달 시스템이 엉망이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국방부는 지난해 말 군수 분야에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하고, 저렴하고 품질 좋은 민간 제품 구매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납품업체 사이의 경쟁을 유도해 품질을 끌어올려야 한다. 무엇보다 불량 군수품을 솎아내는 품질 관리와 납품 비리를 엄단하는 노력이 병영 복지의 첫 단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