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원 줄어 줄줄이 폐쇄… “강사들 사비 털어도 역부족” 꺼져가는 야학의 등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3일 03시 00분


3년전 206곳서 현재 163곳… 4곳중 3곳은 외부지원 절실
무보수 강사 “학생있어 못떠나”

“친애하는 존에게.”

13일 오후 8시 서울 성동구 금호동 골목길의 4층짜리 허름한 건물 2층에 있는 야학(夜學) ‘사랑방배움터’에서는 2교시 영어 수업이 한창이었다. 야학 강사 김태정 씨(20·고려대 의예과 2)가 칠판에 ‘Dear John’이라고 쓰자, 학생인 이자연(가명·17) 양이 큰 목소리로 의미를 풀이했다. 고교 중퇴 후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이 양은 아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손을 번쩍 들었다.

책상과 의자, 컴퓨터 등 각종 집기로 가득한 33m²(약 10평) 넓이의 강의실은 배움의 열기로 뜨거웠다. 사랑방배움터는 하루 3시간씩 저소득 청소년과 기초교육이 필요한 성인을 대상으로 국어 영어 수학을 가르친다. 1993년부터 꾸준히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져온 이곳에선 현재 성인과 청소년 10여 명이 배움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 사비로 야학 꾸려가는 봉사자들

사랑방배움터는 매년 500만 원씩 나오던 정부지원금이 2010년부터 끊겨 문을 닫을 뻔했다. 김 씨를 포함한 대학생 강사 18명은 “이대로 야학이 사라지면 안 된다”며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내놓는 등 십시일반으로 월세 50만 원을 마련해 6개월을 버텼다. 지난해부터는 성동구의 지원으로 월세를 내고 있지만 교재비와 공과금 등은 여전히 이들이 부담하고 있다. 18명의 강사들은 매달 3000원씩 모아 ‘야학 저금통’에 넣고 있다. 김 씨는 “학업과 아르바이트, 무료 강의 봉사를 병행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도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야학을 찾는 학생들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다”고 했다.

3년 전 대학을 졸업한 김호준 씨(30)도 서울 노원구 월계1동 경로당 3층에 자리한 ‘참빛야학’에서 강사 겸 교무부장으로 일한다. 얼마 전까지 낮에는 사설학원 강사로 일했지만 야학에 집중하려고 그만뒀다. 야학 살림이 어려워지자 매달 교무부장에게 주는 직무수당 40만 원도 반납했다. 참빛야학 강사로 합류한 2005년 이후 그는 복사 용지, 커피, 휴지 등을 사는 데 300만 원 이상을 썼다.

○ 자금난에 속속 문 닫는 야학

전국야학협의회에 따르면 2009년 206개였던 야학은 올해 163개로 줄었다. 정부의 지원 축소는 야학에 치명타가 됐다. 정부는 2009년까지는 51개 야학에 청소년 야학운영사업비로 2억5700만 원을 지원했지만 2010년부터는 중단했다. 정부는 그 대신 사회복지사, 교사 인력을 갖춘 ‘지역아동센터’를 지원하는 쪽으로 정책기조를 바꿨다. 야학의 교육기능 대신 보육기능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일부 지자체는 사회단체보조금 명목으로 야학 지원 예산을 편성하고 있지만 대다수는 재정난을 이유로 자금 지원 요청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동아일보가 취재한 17곳의 야학 중 13곳(76%)은 “외부 지원금 없이는 야학 운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이봉주 교수는 “사회 저변에는 저소득 청소년과 문맹 성인의 교육 수요가 여전히 크다”며 “야학에 대한 국고 지원을 늘리고 교육 복지의 사각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신무경 인턴기자 고려대 철학과 4학년  
#야학#사랑방배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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