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숨질 때까지 공주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5일 03시 00분


재산상속문서 ‘분재기’ 해주 정씨 대종가 자료서 발견
남편은 모반죄로 처형… 노비 전락說 사실무근 확인

경혜공주가 죽기 직전 유일한 혈육인 아들 정미수에게 물려줄 재산을 기록한 분재기. 정선방에 있는 집과 통진에 있는 밭과 땅을 물려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왼쪽 아래에는 경혜공주의 도장이 찍혔고 증인 3명의 수결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경혜공주가 죽기 직전 유일한 혈육인 아들 정미수에게 물려줄 재산을 기록한 분재기. 정선방에 있는 집과 통진에 있는 밭과 땅을 물려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왼쪽 아래에는 경혜공주의 도장이 찍혔고 증인 3명의 수결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문종의 딸로 남편인 영양위 정종(鄭悰)과 동생 단종을 비명에 잃은 경혜공주(1436∼1473)가 죽기 직전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면서 작성한 분재기(分財記·나눠줄 재산을 기록한 문서)가 발견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최근 해주 정씨 대종가에서 제공받은 고문서 1300여 점을 정리하면서 ‘경혜공주인(敬惠公主印)’이라는 붉은색 도장이 찍힌 분재기를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해주 정씨 대종가는 지난해 방영된 KBS2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정종의 종가다.

가로 66cm, 세로 70.5cm인 이 분재기에는 경혜공주가 죽기 3일 전인 1473년 음력 12월 27일 유일한 혈육인 아들 정미수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조선시대 공주가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 목록을 작성해 인장을 찍은 고문서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중연은 밝혔다.

경혜공주는 분재기에서 “내가 불행히 병이 들어 유일한 아들인 미수가 아직 혼인도 못했는데 지금 홀연히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며 “노비는 갑작스러운 사이에 낱낱이 기록해 줄 겨를이 없어 정선방(貞善坊·조선시대 한성부 중부 8방 중의 하나)에 있는 하사받은 가사(家舍·집)와 통진(지금의 경기 김포)에 있는 밭과 땅을 먼저 허락해 준다”고 썼다. 경혜공주는 또 정선방에 있는 집은 자기가 죽은 뒤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고 자손에게 전하며 오래 지니고 살라고 당부했다. 문서에는 문종의 서녀인 경숙옹주의 남편 반성위 강자순 등 증인 3명의 수결(手決·서명 또는 사인)도 있다.

이번에 발견된 분재기를 통해 경혜공주가 죽을 때까지 공주의 신분을 유지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조선후기 일부 문집이나 야사에는 경혜공주가 남편 정종이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돼 모반대역죄로 능지처참된 뒤 순천이나 장흥의 관비(官婢)가 됐다는 기록이 있어 지금까지 경혜공주의 신분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경혜공주#분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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