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이란 세월도 김점덕(45)의 추악한 성욕을 잠재우지 못했다. 그는 2005년 62세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중상을 입혀 4년을 복역했다. 당시에는 전자발찌 제도가 도입되지 않아 출소 후 별다른 감시 없이 3년을 지냈다. 평범하고 성실한 가장이라는 가면을 쓴 채 잠복해 있던 그의 수욕(獸慾)은 자신을 아저씨라며 따르던 이웃 열 살 소녀를 향해 분출됐다.
이제 더는 백화점식의 구호만 요란한 대책은 필요 없다. 하나라도 실효성 있는 대책을 확실하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 전자발찌 부착 대상을 제도 도입 이전 이후를 따지지 말고 성폭력 전과자 전체로 확대하는 게 그 첫 번째 단계가 될 것이다. 일각에서 ‘소급 적용’이며 ‘이중 처벌’이라고 지적하지만 전자발찌 부착 확대는 소급 처벌이 아닌, 흉악 범죄 예방 정책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전자발찌 착용 확대해야
김점덕과 같은 성범죄자는 두 명 가운데 한 명꼴로 재범을 한다. 제대로 된 재발 방지 장치가 없어 성폭력 범죄자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하루 3번꼴로 아동 성범죄가 일어나는 나라에 살고 있다.
현재 전국에는 경남 통영 초등생 성폭행 살해 피의자인 김점덕처럼 신상정보 공개 대상에서 제외되고 전자발찌도 차지 않은 성범죄 전과자가 2만 명에 달한다.
경찰은 현재 신상정보 공개 대상은 아니지만 재범 확률이 높은 성범죄 우범자 2만여 명의 명단을 작성해 관리하고 있다. 성범죄로 최근 15년 안에 5년 이상 또는 최근 10년 안에 3년 이상 실형을 선고받거나 최근 5년 안에 세 차례 이상 입건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경찰은 이들을 감시할 법적 근거가 없어 1∼3개월에 한 차례 주변인을 통해 동향을 파악하는 정도에 그친다. 또 이 중 누가 아동 성범죄자인지도 모르고 있다. 감시 대상자가 추가 성범죄를 저질러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관리가 허술하다. 경찰은 김점덕을 성범죄 우범자로 분류해 사건 발생 이틀 전 동향을 점검하고도 특이점을 찾지 못해 범행을 방치한 꼴이 됐다.
성범죄 우범자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 소급 적용만으로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24일 취재팀이 성범죄자 신상정보가 공개돼 있는 정부의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특정 읍면동을 검색하면 그 안에 사는 성범죄자의 이름과 얼굴, 간략한 범죄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자녀 학교명으로 검색하면 학교를 중심으로 반경 1km 안에 사는 성범죄 전과자의 신상정보가 뜬다. 하지만 읍면동까지만 공개되고 세부 주소는 안 나온다.
부모들은 “도시의 동이라는 게 얼마나 큰 행정구역인데 어느 동에 산다는 정보만으로 성범죄자를 어떻게 식별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또 신상정보가 공개돼도 주민들이 성범죄자의 얼굴과 이름을 일일이 외우고 다니지 않는 한 예방효과가 크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이 때문에 신상정보 공개를 강화하고 동시에 전자발찌 착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13세 미만 아동을 성폭행하거나, 2회 이상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형기를 마친 후에도 발목에 전자발찌를 채우는 이 제도는 성범죄 전력자의 동선을 실시간 추적 감시할 수 있어 실효성이 높다. 법무부 조사 결과 2008년 9월 제도 시행 이후 3년간 전자발찌 착용자의 재범률은 0.9%에 불과했다. 제도 시행 전인 2005∼2008년 검거된 성폭력 전과자의 재범률이 14.5%에 이르렀던 것과 비교하면 많이 낮아진 수치다.
조윤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전자발찌 착용자에 대한 설문 결과 83%가 발찌 부착 기간에 불법 행동을 피하려 노력했다고 답했다”며 “범행을 하면 바로 수사선상에 오를 것에 심적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전자발찌 제도 도입 전 범행을 저지른 성범죄 우범자들에게까지 전자발찌를 채우는 것은 소급 적용이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전자발찌를 형벌의 차원이 아니라 범죄 예방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소급 적용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전자발찌 제도에 대한 사법부의 적극적인 의지도 필요하다. 올 1월부터 지난달 30일까지 법원이 검찰의 전자발찌 명령 청구를 기각한 비율은 40.9%다. 이영란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판사들이 법 이론에 얽매여 피고인 인권보장에 무게를 두고 성범죄의 높은 재범률은 간과하고 있다”며 “사법부가 2차 피해를 막는다는 의지를 갖고 전자발찌 착용 대상을 적극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자발찌제의 내실 있는 운영을 위해 인력 확충도 시급하다. 현재 전자발찌 착용자는 982명으로 2008년 151명에서 6.5배로 늘었다. 하지만 위치추적 관제센터 요원과 현장 보호관찰관 등 관리 인력은 64명에서 102명으로 1.6배로 느는 데 그쳤다.
○ 화학적 거세 실효성 논란 결론내야
지난해 7월 대대적인 토론 끝에 도입됐지만 실제론 유명무실해진 ‘화학적 거세(성충동 억제 약물치료)’ 제도를 이대로 방치할 것인지도 논의해야 한다. 화학적 거세 제도가 지난해 7월 도입된 이후 실제 집행 건수는 1건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약물치료의 실효성을 입증할 연구 결과가 미흡해 법원이 집행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한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약물치료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연구와 조사 결과가 서둘러 뒷받침돼야만 제도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강제로 남성성을 억제하면 스트레스를 받은 성범죄자가 또 다른 범죄를 일으킬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며 “성폭력 가해자들의 심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뒤 이를 토대로 지속적인 심리치료를 병행해야 근본적 해결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충격적 사건이 발생하면 백화점식으로 숱한 제도를 도입한 뒤 어느 하나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 당국의 무관심이 어린이 성폭행 사건의 재발을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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