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농촌 어르신 황혼의 시화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7일 03시 00분


전남 함평 29명 자작시 모아 10월 문학지도 출간 예정

“일생 동안 자식을 키우고 농사일 거들어온 내 손. 부르트고 거칠어진 내 손. 가만히 만져보니 따스한 내 손….”

전남 함평군 해보면 상곡리 상모마을 윤석연 할아버지(81)의 자작시 ‘내 손’이다. 윤 할아버지는 28일 마을 당산나무 숲에서 열리는 시화전을 앞두고 마음이 설렌다. 처음으로 쓴 시를 보고 남들이 뭐라 할까 걱정도 되지만 내 손으로 시 한 편을 지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윤 할아버지는 5월부터 매주 한 차례 함평군 문화원이 주관한 ‘늘그막, 원고지와 만나다’ 강좌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

28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모평 느티나무 숲 무지개 詩 걸렸네’를 주제로 열리는 시화전에서는 윤 할아버지 등 마을 어르신 29명의 자작시 30편을 선보인다.

김효림 할머니(77)는 ‘나는 우리 영감님이 제일 사랑스럽디다’란 시에서 부끄러운 고백을 하고, 대종손 종부로 한 해에 13차례 제사를 지내 힘들었다는 최묘순 할머니(83)는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어라우. 자고로 사람은 법도대로 살아야 쓰것다 그런 생각이 드는구만요”라며 안분자족의 마음을 표현했다.

이들이 시화전을 열기까지는 함평 문학동인 ‘자미’ 회원들의 도움이 컸다. 회원들은 어르신들이 가족에 대한 사랑과 고단했던 삶에 대한 애환 등을 이야기하면 이를 기록했다가 보여주고 어르신들이 다시 시로 쓰도록 도와줬다. 최권진 함평군 문화원 사무국장(51)은 “마을 어르신들의 시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강좌를 개설한 지 3개월여 만에 시화전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함평문화원은 10월에 어르신들의 시와 편지글, 유언, 출향 인사의 글 등을 모아 ‘모평문학지’를 출간할 예정이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시화전#당산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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