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전남 신안군 지도읍 송도위판장. 바닥에 두껍게 깔린 얼음더미 위로 은회색 민어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5, 6kg 정도 되는 작은 것부터 10kg 이상의 어른 허벅지만 한 것도 있다. 오전 8시 반부터 시작된 경매는 정오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이날 위판량은 7t. 민어 경매가 시작된 6월 중순 이후 가장 많은 양이다. 남희현 신안군수협 북부지점 판매과장은 “kg당 평균 위판가가 2만5000원 선으로 한 달 전 6만 원대까지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 여름 최고 보양식
‘여름의 보약’으로 불리는 민어의 연간 국내 어획량은 200∼400t. 90% 이상이 송도위판장 인근인 신안군 임자도와 영광군 낙월도 근처 해역에서 잡힌다. 민어는 삼복더위 들머리에 이 해역에서 잡히는 것을 최고로 친다. 산란기를 맞아 연안을 회유하면서 왕성한 먹이활동을 해 살이 통통 오르기 때문이다. 몸길이가 70cm부터 큰 것은 1m가 넘는다. 10kg이 넘어야 제맛이 난다.
다른 생선과 달리 민어는 암컷보다 수컷을 더 쳐준다. 암치(암 민어)는 알이 너무 많고 살도 푸석거려 수컷에 비해 kg당 7000∼8000원 정도 싸다.
일반 소비자는 송도위판장 바로 옆 중매인들이 운영하는 22개 점포에서 민어를 살 수 있다. 전화로 주문하면 손질한 민어를 냉동 포장해 택배로 보내 준다. 중매인 장천석 씨(52)는 “매년 7월 말부터 전국에서 택배 주문이 몰리는데 지난해 성수기에는 하루 200∼300kg을 부칠 때도 있었다”고 했다.
민어는 조선시대부터 최고의 여름 보양식으로 꼽혔다. ‘민어탕이 일품(一品), 도미탕이 이품(二品), 보신탕이 삼품(三品)’이란 말이 있었을 정도다. 백성들이 즐겨먹는 물고기라 해서 ‘민어(民魚)’란 이름이 붙여졌지만 실제로는 궁궐과 양반이 즐긴 고급 어종이었다. 동의보감은 ‘회어(회魚)’라고 해서 보양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방에서는 위를 강하게 하거나 이뇨작용을 돕는 약으로 사용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민어에 대해 ‘큰 것은 길이가 4, 5자이다. 비늘이 크고 입이 크다. 맛은 담담하고 좋다. 날 것이나 익힌 것이나 모두 좋고 말린 것은 더욱 몸에 좋다’고 전한다.
민어는 6월 말부터 욱욱거리는 특유의 울음보가 터지는데 이때부터 9월 초까지가 제철이다. 특히 복더위를 앞둔 소서(小暑) 무렵이 달고 기름지기로 유명하다. 9월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맛이 떨어진다.
○ 버릴 것 하나 없는 민어
민어는 부위별로 맛도 다르다. 껍질과 함께 썰어내면 속살이 진달래 꽃잎처럼 연분홍색이다. 배받이는 기름지고 고소하며 쫄깃하다. 운동량이 많은 꼬리와 지느러미 부근은 탄력이 강하다. 입안에 넣으면 살살 녹으면서 담백하고 고소하다. 겨자와 초장, 또는 된장과 고추장을 버무린 양념장과 함께 상추나 깻잎에 싸서 먹으면 제맛이다.
민어는 버릴 것도 없다. 살은 생선회로, 뼈와 머리는 내장과 함께 매운탕으로 먹고 껍질과 부레는 기름소금과 함께 먹는다. 민어 맛을 아는 사람들은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부레를 최고로 친다. 전라도 사람들은 “홍어의 진미가 애(간)라면 민어엔 부레가 있다”고 한다. TV드라마 ‘식객’에서 최고의 숙수(熟手)를 뽑는 첫 번째 시험문제가 바로 ‘민어부레를 이용한 요리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민어 알은 ‘봄 숭어알, 여름 민어 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으뜸이다. 신안군 지도읍에서 20년 조리 경력을 갖고 있는 지도횟집 주방장 박종필 씨(40)는 “민어는 펄펄 뛰는 활어보다 숙성된 선어(鮮魚·냉장된 것)가 맛있다”며 “얼음 속에서 만 하루 동안 숙성시켜 회로 썰었을 때 쫄깃함이 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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