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77% “성폭력 예방법 알고 싶어요”… 학교선 한 학기 8시간 동영상 틀어주고 끝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7일 03시 00분


본보, 성교육 실태 조사

“아저씨가 다가왔어요. 제 머리를 만지작거렸죠. 손등으로 목덜미를 쓰다듬었어요. 소름이 끼쳤죠. 그냥 몸이 떨렸어요. 아저씨가 가고, 전 그냥 서 있었어요. 엄마한텐 얘기를 못했어요. 원래 알던 아저씨였거든요.”

서울 강동구에 사는 이민정 양(가명·초등학교 3년)이 두 달 전에 겪은 일이다.

민정이 사례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성폭력 범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가해자 10명 가운데 7, 8명은 아는 사람. 경남 통영시 산양초등학교 4학년 한아름 양(10)을 살해한 김점덕(45)도 ‘이웃집 아저씨’였다. 성폭력 예방 교육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동아일보가 서울 강동구와 강남구 초등학생 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현장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성범죄자=낯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무거운 물건을 골목길까지 들어 달라고 하면 절반에 가까운 46.6%가 ‘아는 사람이면 들어 주겠다’고 답했다. 누구든 상관없이 도와주겠다고 응답한 비율도 28.8%나 됐다. 24.7%만이 들어 주지 않겠다고 답했다. 혼자 집에 있을 때 아버지 친구라는 사람이 찾아와 문을 열어 달라고 할 때도 ‘열어주지 않겠다’는 응답은 23.3%에 그쳤다. 심지어 김다래 양(초등학교 5년)은 “무섭게 생기지만 않았다면 열어 주겠다. 시원한 물도 갖다 드릴 것”이라며 웃었다. 선진국에서는 초등학생에게 성교육을 할 때 성폭력 예방에 초점을 맞춘다. 국내 초등학생들도 성폭력 예방교육을 원한다.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남자의 77.1%, 여자의 77.3%가 가장 배우고 싶은 성교육 주제로 ‘성폭력 예방법’을 선택했다. 교육 현장은 이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시스템도 부족하고, 대응 매뉴얼도 낡았다. 경기의 B초등학교 교사도 “별도의 매뉴얼이나 자료가 없다. 지난 학기에 8시간 정도 성교육을 했지만 관련 동영상을 틀어주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성폭력 예방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임정은 초록우산 서울아카데미 교육사업팀장은 “일단 현재보다 시간과 인력을 3배 이상 투자해야 한다. 사례별로 상황극을 하거나 학생의 상태에 따라 맞춤형으로 교육해 피부에 와 닿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초등학생#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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