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숨진 여환자의 시신을 버린 혐의를 받고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 김모 씨(45)는 지난달 30일 사망한 이모 씨(30·여)에게 수면유도제뿐 아니라 영양제 등 다른 약물을 함께 투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2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김 씨는 “7월 30일 이 씨에게 수면유도제 미다졸람이 섞인 수액과 하트만덱스(포도당 영양제) 등이 들어 있는 수액을 섞어 투약했다”며 “1년 전 이 씨를 수술하며 환자와 의사로 처음 만난 이후 3개월에 한 번씩 따로 만났다”고 진술했다. 김 씨는 3개월에 한 번씩 만나 영양주사를 직접 투여해주고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그는 이 씨와 내연관계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날 김 씨가 병원 허락 없이 몰래 약물을 갖다 쓴 사실도 확인됐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H산부인과 관계자는 “김 씨가 이 씨에게 약물을 투여한 상황이 정상적인 진료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경찰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떳떳한 목적으로 약물을 사용한 게 아니라는 정황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이날 경찰은 시신을 유기한 혐의(사체유기 등)로 김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날 이 씨의 가족 입회하에 진행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외관상 특별한 외상이나 성폭행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투약된 약이 실제로 미다졸람인지, 투약량은 어느 정도인지, 사건 당일 성관계가 있었는지 등의 확인은 유전자(DNA) 정밀 분석이 필요해 20여 일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 안팎에서는 김 씨가 이 씨와의 성관계를 인정한 사실에 비춰 미다졸람을 영양제와 함께 투약해 성관계 시 흥분을 돋우는 환각제나 최음제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전에도 의사들이 수면유도제인 미다졸람이나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 등 정맥마취제를 짧은 시간에 기분을 좋게 만드는 마약처럼 사용한 사례가 있다. 지난해 초 성형외과 전문의 A 씨는 환자에게 투약하고 남은 정맥마취제를 병원 건물 화장실에서 직접 투약하고 잠이 들었다가 건물 청소부의 신고로 경찰에 입건됐다. A 씨는 경찰의 추궁에 “업무 스트레스가 심하고 잠도 오지 않아 잠도 자고 기분도 전환하려고 투약했다”고 진술했다. H산부인과 인근의 한 산부인과 관계자는 “약품은 마취과에서 관리하지만 의사나 간호사가 정맥마취제를 빼내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다른 병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귀띔했다.
2010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국내 102개 병원 마취과 의료진을 대상으로 정맥마취제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국내 72개 병원 중 6개 병원 의료종사자 8명이 정맥마취제에 중독됐으며 이 중 2명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명훈 고려대 의대 마취통증의학교실 교수는 “정맥마취제가 최음제나 환각제, 피로해소제 작용을 한다고 알려진 것은 불법 유통업자의 상술”이라며 “잠을 잔 후 일시적인 진정작용으로 오히려 정맥마취가 주는 안정감에 중독되면 건강을 크게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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