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도 경매로 하는 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3일 03시 00분


■ 불황이 낳은 알뜰 웨딩풍속

최근 서울 광진구의 W웨딩홀에서 결혼한 이모 씨(28)는 웨딩 경매를 통해 식장을 싸게 구했다. 여러 예식업체의 입찰을 받은 뒤 가장 싼 값에 결혼식장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곳을 고르는 역(逆)경매를 활용한 것이다. 이 씨는 “마침 예식이 취소돼 홀이 빈 업체가 꽃, 폐백실, 홀 대관료를 무료로 하고 하객 식대까지 1인당 2000원 할인된 금액을 제시해 총 300만 원가량을 아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불황의 여파가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에게도 미치면서 웨딩 경매로 싼 값에 예식장을 구하거나 쿠팡, 티켓몬스터 등 소셜커머스를 통해 예물과 혼수품을 할인받는 ‘웨딩 프라브족’이 늘고 있다. 취업난, 결혼난, 주택난의 삼중고(三重苦)에 놓은 젊은 인터넷 세대가 만든 새로운 결혼문화라는 분석도 나온다.

남들보다 싸게 살수록 만족감도 큰 웨딩 프라브족의 특성상 이들은 ‘최저가 결혼’에 가장 효과적인 웨딩 경매에 큰 관심을 보인다. 웨딩홀 경매를 주선하는 아이티웨딩의 이행욱 실장은 “인터넷 최저가 비교에 익숙한 20, 30대 소비문화에 경기침체가 더해지며 입찰 건수가 전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며 “웨딩 경매가 인기를 끌자 경쟁업체들이 잇달아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이 업체에는 최근 일주일 동안 220여 건의 신규 입찰이 등록됐다.

웨딩플래너에 의존하는 대신 소셜커머스를 검색해 스스로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도 늘고 있다. 쿠팡은 4월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패키지), 예물, 신혼여행 등을 모은 웨딩 기획전으로 12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웨딩 프라브족의 수요가 늘면서 웨딩 상품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소셜커머스 시장이 최근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올가을 결혼하는 직장인 김모 씨(30)는 웨딩 소셜커머스를 통해 220만 원짜리 스드메를 129만 원, 120만 원짜리 신랑 신부 한복 세트를 59만 원에 장만했다. 웨딩 소셜커머스 펀스펀스의 이영헌 대표는 “‘일생에 단 한 번’이라며 금액에 연연하지 않던 부모 세대와 달리 요즘 커플들은 ‘제값 주고 사면 바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폭풍 검색’으로 최저가를 찾아내는 예비부부가 많아지자 가구, 침구 등 혼수업체들도 온라인 전용 상품을 내놓고 있다. 주방용품 업체인 락앤락은 올해 초 온라인 전용 혼수품 ‘쿡플러스세라믹 신혼살림 8종 세트’ 등을 출시해 인기를 끌고 있다. 가구업체인 한샘은 온라인 전용 침실 브랜드 ‘플레인’을 선보였으며, 침구 브랜드 이브자리는 이달 말 온라인 브랜드 ‘이브앤’을 론칭할 예정이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0, 30대는 비교적 풍요로운 환경에서 고급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사회 진출 문턱에서 취업난, 전세난 등으로 고통을 겪는 아이러니한 세대”라며 “웨딩 경매 등 최저가 결혼문화는 실속과 합리성, 자기만족을 중시하는 이들의 특성과 현재의 사회 여건이 동시에 영향을 미친 결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채널A 영상] 엉터리 결혼중개업체 “700만 원 ‘투자’로 전문직男 만나시고…”

:: 웨딩 프라브족 ::

프라브(PRAV)란 ‘Proud Realizers of Added Value’의 줄임말로 자기만족을 중시하는 실속파 소비자를 가리킨다. 비슷한 물건을 남보다 싸게 사는 데서 만족을 느끼고 이를 자랑하기 위해 가격 공개 충동을 느낀다. 최근 한국의 젊은 세대 중엔 혼수품을 살 때도 이런 특성을 보이는 ‘웨딩 프라브족’이 늘고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이수민 인턴기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결혼식#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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