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 800억 배상 받았지만… 변호사가 절반 떼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8일 03시 00분


■ ‘빛 좋은 개살구’ 논란

1984년 고 조영래 변호사가 ‘망원동 수재민 집단소송’을 제기한 이래 집단소송은 거대 집단에 맞서는 힘없는 소시민과 소비자들의 희망이 됐다.

최근 주목받는 집단소송은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대부분이다. 지난주 KT 휴대전화 가입자 830여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에 대해 한 법무법인이 “피해자들로부터 100원 씩만 받고 집단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또 최근 은행권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에 대해서도 CD 금리 연동 대출을 받은 고객들이 은행들을 상대로 소송을 내는 등 집단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집단소송은 피해구제로는 이어지지 않은 채 변호사와 브로커들의 배만 불릴 수 있어 신중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집단소송을 내기 전에 소송으로 제대로 보상 받을 수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에는 아파트 균열처럼 구체적인 피해가 있는 경우에만 보상을 청구했지만 최근에는 개인정보 유출처럼 직접적이고 눈에 보이는 피해가 없는 경우에도 소송을 내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그렇다 보니 피해를 입증하기가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패소해도 비용 부담은 피해자 몫으로 남고 변호사는 적지 않은 수임료를 챙기는 현상이 발생한다.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14만여 명을 모아 손해배상을 청구했던 한 1심에서 피해자들이 패소하자 10만 명 이상이 항소를 포기했다. 이 사건 피해자들은 소송 참가 비용으로 1인당 1만∼3만 원을 냈지만 소송 참가 비용은 돌려받지 못했고 이 돈은 변호사 몫으로 돌아갔다.

집단소송 원고인단을 모집하는 인터넷 카페 중에는 변호사나 법무법인이 아닌 ‘브로커’들이 피해자들을 모아 카페를 운영하는 곳도 있다. 이들은 변호사에게 피해자들을 소개하고 운영비 등의 명목으로 돈을 챙긴다. 돈 문제로 변호사와 마찰이 생기면 일방적으로 변호사를 바꾸기도 한다. 한 집단소송 카페는 카페 운영진이 최근까지 담당 변호사를 세 차례나 바꿔 피해자들이 “소송 진행 상황을 제때에 알지도 못하고 질문을 해도 답변을 받기 힘들다”며 항의하기도 했다.

수임료가 적거나 없을 때엔 성공보수가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구 공군비행장 K2 주변 주민 8만5000여 명이 “전투기 소음으로 인한 피해를 배상하라”며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배상액 799억6000만 원을 인정받았지만 이 중 변호사가 364억900만 원을 수임료로 가져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청구금액 중 일부만 인정돼 보상금액이 적은 경우에는 소송비용을 빼고 나면 피해자가 실제 받는 보상금은 거의 없는 경우도 많다. 2005년 엔씨소프트와 2008년 하나로텔레콤(SK브로드밴드)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2∼3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승소하긴 했지만 1인당 인정된 배상액은 10만∼20만 원 수준이었다.

[채널A 영상] 고소득자 탈세액 ‘3600억’…그들은 지금도 배고프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일부 피해자가 기업의 위법행위나 불공정거래와 관련한 소송에서 이기면 같은 피해를 본 다른 소비자들도 별도 소송 없이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향후 집단소송이 어떤 모습으로 법제화될지 주목된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신가현 인턴기자·변호사  
#집단소송#수임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