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터놓고 톡]<15·끝> 9월 학기제 도입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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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8일 03시 00분


“선진국 학제 맞춰 교류 확대” vs “1000만명 진학-취업 대혼란”

《 지난달 한국교육개발원과 대한교육법학회는 9월 학기제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9∼10월에 학년도를 시작하는 9월 학기제는 미국 유럽에서 운영하고 있다. 한국은 3월 학기제를 채택하고 있다. 토론회에서는 “대학은 물론이고 초중등 단계에서도 해외 교류가 활발해지는 점을 감안해 한국도 선진국에 맞춰 학기제를 바꾸자”는 제안이 나왔다. 9월 학기제에 대한 논의는 2006년에도 진행됐었다. 당시 교육혁신위원회는 국제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로 ‘이르면 2011년에 9월 학기제를 적용하겠다’고 했지만 시기 상조론에 밀려 무산됐다. 그러나 일본 도쿄대가 학기 시작을 4월에서 9월로 바꾸겠다고 하는 등 여건이 달라지면서 도입 논의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9월 학기제 도입을 둘러싼 의견을 들어봤다. 》
■ 이래서 찬성한다


9월 학기제 도입을 촉구하는 쪽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표준)’를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글로벌 경쟁 시대를 헤쳐 나가려면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워야 하는데, 국내의 3월 학기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애당초 3월 학기제를 채택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는 것도 9월 학기제 도입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학기제를 바꾸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혼란은 있겠지만 이를 잘 극복하면 한국의 경쟁력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 국제적 호환성 높여야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학기제는 국제 표준과 맞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학년도 시작이 다르다 보니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기에 불리하고, 교원 교류도 어렵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다 한국 학교로 돌아오는 초중고교생들은 한 학기가 맞지 않아 불편을 겪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정책네트워크연구실 실장인 황준성 박사도 “여러 국적의 외국인이 국내로 유입되고, 외국으로 진출하는 한국인이 늘어남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와의 교류 능력을 높이는 학제가 필요하게 됐다”며 “학력과 자격의 국제 호환성을 높이려면 학제 간 연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 박사는 “2006년에 9월 학기제가 논의됐을 때보다 지금은 국제 교류가 더욱 활발해졌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9월 학기제를 실제로 적용하려면 준비 기간도 필요하므로 이제는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범부처 차원에서 9월 학기제 도입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 교수는 “정치, 경제, 고용구조, 가족생활, 문화풍토 등 전면에 걸쳐 가을학기제를 도입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 3월 학기제, 정책적 근거 없어

9월 학기제 찬성론자들은 국내의 사회적, 환경적 여건을 감안하면 굳이 3월 학기제를 고수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가 3월 학기제를 도입할 당시 교육적인 원리를 고려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당시 사회경제 여건상 난방비를 충당할 교육 재정이 부족했고, 일본이 봄 학기제를 운영한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기후를 따져 봐도 가을학기제가 학생들의 신체활동에 더 적합하다는 것이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날씨가 추워서 야외 활동이 힘든 겨울에는 방학을 2∼3주 정도로 짧게 해서 교실에서 공부하는 기간을 늘리고, 여름에는 3개월 정도의 긴 방학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배우게 하자는 논리다. 박 교수는 “우리보다 겨울이 춥고 긴 미국 중북부나 캐나다, 북유럽 국가들이 가을학기제를 운영하는 이유도 자연친화적 교육을 위한 것”이라며 “호주나 중남미의 일부 국가가 3월 학기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 국가들은 남반구라서 실질적으로는 가을학기제와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에 근대교육 제도가 처음 도입될 때는 가을학기제에 가까웠던 역사도 있다. 갑오개혁기의 대표적 교육법령으로 1985년 발표된 ‘한성사범학교규칙’은 학년도의 시작을 7월로 정했다.

○ 일시적인 혼란은 극복 가능

9월 학기제 도입에 따른 혼란은 준비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찬성론자들은 주장한다. 이미 과거에 학기제를 바꿔본 경험도 있다. 1949년 교육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가을학기제를 4월 학기제로 전면 수정했었다.

9월 학기제 찬성론자들은 현재의 걸림돌을 고민하지 말고 미래의 대책을 논의할 때라고 지적한다. 황 실장은 “학기제를 바꾸려면 입학 자원의 변화, 교원 및 교육시설 수요의 급변 등이 불가피하고 전환기에 있는 학생들은 입시 및 노동시장 진입 과정에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전제한 뒤 “이제는 정책 결정권자의 선택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이를 도울 합리적인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밝혔다. 전환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이익이나 법적 분쟁을 예상하고, 이를 미리 방지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전략을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박 교수는 “어느 한 시점에서 전면적으로 9월 학기제를 시작하기보다는 관련 법령을 미리 정비하고 단위 학교에 자율성을 주는 등 사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 이래서 반대한다

9월 학기제 도입 반대론자들은 학기제 개편에 따른 실익보다 시스템을 바꾸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는 점을 우려한다. 정확한 비용을 추산하지 않은 채 막연히 선진국과 맞춰보자는 논의는 너무 위험하고 안일하다는 것이다. 9월 학기제가 적용돼 여름방학이 길어지면 가뜩이나 기승을 부리는 방학 중 사교육이 더 확대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지적한다.

○ 이익보다 큰 비용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정책자문관인 배영찬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국제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학기제를 바꾸자는 주장은 경제적으로도 정확한 비용 계산이 선행돼야 한다. 일부 유학생의 국제 교류를 원활하게 하는 데서 얻는 이득보다 1000만 명에 달하는 전체 학생의 학기를 바꾸는 데 따른 부수비용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선진국과 학기가 다르다고 해서 교류를 못한다는 의견도 따져봐야 한다. 학제가 다르다고 해서 연구나 국제협력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교환학생 몇 명을 늘리기 위해 1000만 명의 학제 근간을 다 바꿔야 하느냐의 문제가 된다”고 덧붙였다.

대학의 경우에는 학제를 맞추는 것이 더이상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오성삼 건국대 교육공학과 교수는 “요즘 대학은 군대, 어학연수, 인턴제, 졸업유예 등으로 졸업 시기 자체가 유동적이다. 학생들의 학기를 일일이 다 맞추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외국도 국가별로 한두 달씩 편차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9월 학기제로 바꾼다고 해서 다른 나라들과 학제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학기를 바꾸는 것이 간단한 문제도 아니다. 예산 체제와 회기를 바꿔야 하고, 교원 인사와 졸업생의 취업 등 관련 시스템을 모두 바꿔야 한다. 2006년 9월 학기제를 논의했을 당시에도 이런 문제가 걸림돌이 됐었다.

○ 사교육과 경제성도 문제

9월 학기제를 도입하면 초중고교에서는 사교육과 학교 운영비가 늘어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기간이 엇비슷하다. 겨울방학 기간이 여름방학보다 약간 더 긴 수준이다. 만약 국내에 9월 학기제가 도입돼 미국 등 다른 나라와 학기 운용이 비슷해지면 여름방학은 3개월 정도로 늘어나고, 겨울방학은 짧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가뜩이나 기승을 부리는 여름방학 사교육이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어학연수나 해외캠프 같은 고액 사교육 시장이 집중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배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교육열이 높은 곳에서는 3개월짜리 방학은 곧 3개월짜리 사교육 코스로 이어질 것이다. ‘이 기간을 집중적으로 활용하면 경쟁자를 따라 잡을 수 있다’는 식의 사교육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겨울이 긴 우리나라의 특성상 겨울방학이 짧아지면 난방비가 늘어난다는 점도 단위 학교 차원에서는 큰 부담이다. 오 교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의 겨울방학이 길었던 이유 중 하나는 교실 난방에 쓰는 연료를 줄이기 위한 것도 있었다”며 “가뜩이나 에너지 문제가 심각한데 겨울방학이 짧아지면 학교마다 난방비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불안감과 혼란 최소화해야

국내 교육 현실에서는 무엇보다도 불안감이나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학기제를 바꾸려면 자연히 입시까지 건드려야 하는데, 이 경우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우리 교육정책은 새로운 걸 도입할 때 자신 있게 좋은 점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는 논리로 주장하는 것이 문제”라며 “교육은 부작용이 없는 한 지속적인 일관성이 중요하다. 바꾸지 않으면 모두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현재 별 문제가 없는데도 제도를 바꿀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배 교수 역시 “학기제를 바꾸면 초중고교부터 대학과 취업에 이르기까지 현장에 정착되는데 적어도 10년 이상 걸릴 것이다. 여기에 드는 사회적 비용과 혼란이 막대하다”며 “외국과의 학기제 격차는 현재 시스템에 유연성과 탄력성을 주면 해결되므로 시스템 자체를 바꿀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9월 학기제#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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