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성산동 A 아파트에 사는 정민기 씨(32)는 6일 밤 샤워를 하다 깜짝 놀랐다. 무심코 기댄 화장실 벽이 마치 온돌방 바닥처럼 따끈따끈했기 때문. 집안의 다른 벽들도 뜨겁기는 마찬가지였다. 정 씨는 “벽이 이렇게 열기를 내뿜고 있을 줄은 몰랐다”며 “예전에는 에어컨을 끄고도 두 시간 정도 시원함이 유지됐는데 요즘은 에어컨을 끄면 곧바로 땀이 난다”고 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건물이 뜨겁게 달궈져 해가 진 뒤에도 ‘불덩이’로 남아있는 집이 많다. 더위를 피해 집 밖으로 ‘대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7일 오후 동아일보 취재팀이 정 씨의 아파트 벽체 온도를 측정한 결과 바깥쪽 벽은 53.1도로 이날 낮 최고기온이었던 35도보다 18도나 높았다. 안쪽 벽 역시 43도로 8도가량 높았다. 이처럼 높은 벽체 온도는 요즘 같은 폭염에서 밤에 실내온도를 높이는 주범이다. 통상 바깥 기온이 떨어지면 낮 동안 햇빛에 달궈진 벽의 열기가 실외로 방출되지만 요즘은 워낙 밤에도 바깥 기온이 높다 보니 벽의 열기 대부분이 실내로 방출되는 것이다. 서울지역 낮 최고 기온은 최근 일주일째 35도를 웃돌고 있으며 밤 기온이 25도 이상으로 유지되는 열대야 현상도 지난달 28일부터 12일째 계속되고 있다.
좋은 집의 으뜸 조건으로 꼽히는 남향 주택은 이런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남향 아파트는 주로 남쪽에 큰 창문이 있다. 겨울엔 남쪽 창문을 통해 햇볕을 오래 받아 추위를 덜어주지만 남동풍이 부는 한여름에는 뜨거운 공기에 맞서 있는 구조다. 반대편인 북쪽에는 출입문과 조그만 창문만 있는 경우가 많아 더운 공기가 잘 빠지지 않고 건물 안에 갇히게 된다.
남쪽의 큰 창문 쪽에 주로 설치되는 에어컨 실외기도 실내 공기를 덥히는 데 한몫한다. 여름철 남동풍이 실외기의 열을 실내로 밀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가천대 실내건축학과 최성수 교수는 “남향인 집에서 남쪽 창에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는 것은 마치 아파트에 핫팩을 붙이고 있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주상복합형 아파트도 더위를 부르는 주택이다. 건물 구조가 가운데가 뻥 뚫린 ‘ㅁ’자 형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구조가 바람의 흐름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명지대 건축학부 김왕직 교수는 “건물 가운데 모아진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덥혀져 실내 온도를 높이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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