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보다 더한 걱정거리를 안고 사는 사람도 있다. 10일 시작되는 이주를 앞두고 국내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인 서울 송파구 가락시영 아파트 세입자들이 비싼 전세금 때문에 이주할 곳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곧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오면 전셋집을 어떻게 구할지 걱정입니다.”
서울 송파구 가락시영 아파트 세입자 김모 씨(58)는 요즘 이사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 당장 이달 10일부터 가락시영 6600채(34∼61m²) 중 5500채가 집단이주할 계획이지만 마땅한 전셋집을 찾기 어려워서다. 김 씨는 “전세금 5000만∼7000만 원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반지하밖에 없어 대출을 내야 할지, 서울 외곽으로 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인 가락시영의 이주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송파구 전세시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폭염과 휴가철이 끝나고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이주할 집을 알아보기 시작하면 인근 전세시장이 크게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가락시영 재건축 조합은 10일 이주를 시작하기로 하고 25일부터 이주비를 지급할 예정이다. 이미 이주를 끝낸 1100여 채를 제외한 5500여 채가 앞으로 6개월 내에 대거 전세수요로 쏟아져 나오게 된다.
집주인 이주비가 1억8500만 원이고 전체 이주자의 70% 정도가 보증금 1억 원 미만에 세를 살던 세입자여서 저렴한 전셋집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송파구 일대의 저가 전세물량이 턱없이 부족해 세입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지난해 말 강동구 고덕시영에서 2444채가 이주하면서 강동, 송파의 전세 물량이 많이 모자라는 데다 발 빠른 세입자가 미리 전셋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인근 전세금도 크게 올랐다.
가락동 S공인중개업소 대표는 “가락시영 세입자가 옮겨갈 만한 주택의 전세금(1억 원 안팎)은 지난해 말보다 2000만∼3000만 원씩 올랐고 특히 7, 8월에 오름폭이 컸다”며 “가락시영 세입자들이 송파구에 머물려면 석촌동, 삼전동, 송파동의 33m²짜리 다가구주택 반지하 월세 외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가락동 L공인중개소 대표도 “최근은 비수기라 잠잠하지만 25일부터 이주비 지급이 시작되면 수요가 몰려 인근 전세금이 추가로 2000만∼3000만 원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 때문에 세입자들은 대출을 알아보거나 서울 외곽으로 밀려나야 할 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전세 품귀 현상으로 여의치 않다. 경기 성남시 중원구 D공인중개업소 대표는 “8호선 라인의 단대오거리역, 남한산성역 주변 물건에 대해 최근 가락시영 세입자들의 문의가 많이 늘었다”며 “성남 구시가지도 방 2개 전세가 7000만∼8000만 원, 신축주택은 1억∼1억2000만 원인데 전세 물건은 부족한 상황이며, 앞으로 가락시영 세입자들이 몰리면 가격도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근 잠실에서 리센츠(5562채), 잠실엘스(5678채) 등 4년 차 아파트가 대거 재계약 시기를 맞는 것도 전세시장에 부담을 주고 있다. 생활환경이 좋은 잠실에 머물기 위해 세입자들이 대거 재계약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1억 원 이상 뛴 전세금을 올려주기 힘들 경우 강동구 등 인근 지역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 잠원동 대림(637채), 반포동 한신1차(790채) 등이 10∼12월 이주를 시작하면서 서초구 일대에서도 국지적인 전세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 김규정 리서치센터장은 “서울 시내 대규모 이주 수요가 국지적으로 가을 전세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가락시영은 아직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지 않았고 4차에 걸쳐 이주할 예정이어서 전세시장에 미치는 여파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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