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서구청 소속 환경미화원 A 씨는 일년 내내 새벽길을 뒤덮고 있는 성매매 암시 명함형 전단을 치워야 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단속이 강화되면 며칠 주춤하다 다시 뒤덮는 현상에 익숙해진 그였다. 그러나 지난해 4월부터 안마시술소 출장마사지 키스방 등의 전단이 사라졌다. 한 달 뒤면 다시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1년을 훌쩍 지난 요즘까지도 이런 전단은 찾아볼 수 없다.
서울의 어린이 놀이터를 비롯해 전국 대도시 곳곳이 성매매를 유도하는 명함형 전단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본보 11일자 A12면 참조), 대전에서는 기적적으로 성매매 전단이 사라졌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교통 중심지인 대전은 20년 전만 해도 일명 ‘터키탕(여성종업원의 안마와 성매매가 동시에 이뤄지는 곳)’이 서울이나 부산보다 많았다. 유성을 중심으로 룸살롱이 밀집해 있는 데다 중구 유천동, 대덕구 중리동 등 집창촌까지 형성돼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들 지역 중심으로 키스방 안마시술소 출장마사지 등 성매매 전단이 하룻밤에도 수천, 수만 장씩 살포됐다. 학원가는 물론이고 주택가에도 무차별적으로 침투해 청소년 사이에선 ‘많이 모으기’ 경쟁까지 벌어졌을 정도. 특히 이런 전단의 전화번호는 가출 여학생들을 끌어들이는 ‘취업정보’로 이용됐다.
‘단속이 쉽지 않다. 근거가 없다’며 발을 빼던 경찰과 교육청, 행정당국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경찰은 전단 전화번호를 추적했다. 행정당국은 거리에서 전단 배포자를 찾아 폐기물관리법 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했다. 지난해 4월에는 배포자 12명과 인쇄업자 7명, 업주 20명 등 모두 39명을 적발했다.
하지만 이 같은 처방도 잠시. 단속이 소홀해지면 또다시 기승을 부렸다. 여성가족부가 이런 전단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고시해 배포자는 물론이고 인쇄업자까지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에 경찰은 인쇄 자체를 못하도록 ‘길목’을 지키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봤다. 먼저 인쇄업체 관계자들을 만나 개정된 법률(처벌근거)을 설명했다. 경찰의 요청을 받은 대전충남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이사장 구자빈)도 성매매를 암시하는 전단 인쇄를 거부하겠다고 결의했다.
구자빈 이사장은 “대전에서는 이런 전단만큼은 제작하지 말자고 400여 회원사에 공문을 보냈다”며 “처벌도 우려되고, 스스로 불법 퇴폐 영업을 돕지 말자는 조합원들의 동참이 이런 성과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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