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2동 반포한강공원에서 열린 ‘전국물싸움대회’에 모인 시민들이 양동이와 물총으로 물싸움을 즐기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빗속을 뚫고 물 8t을 실은 살수차가 도착하자 서울 반포한강공원에 함성이 퍼졌다. 행인들은 장대비가 퍼붓는 날에 웬 살수차를 동원하나 싶어 가던 걸음을 멈추고 구경했다. 연일 이어지던 폭염 끝에 장대비가 쏟아진 12일 오후 서초구 반포2동 반포한강공원에 모인 청춘 남녀 130여 명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었지만 이보다 더 즐거울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총싸움을 벌였다. 양동이에 물을 퍼서 공중에 뿌려대는 이부터 양손에 물총을 잡고 쏴대는 이까지 저마다 가진 ‘무기’로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냈다.
이들은 인터넷모임 ‘플레이그라운드스피릿(PGS)’이 주최한 제2회 전국물싸움대회 참가자다. 인터넷 카페에 참가희망 댓글을 달고 참가비 1만 원만 내면 준비 완료. 물총부터 고글 방패 등 물싸움에 필요한 각종 장비는 주최 측이 제공했다.
새로운 놀이문화에 목마른 젊은 세대는 끊임없이 색다른 행사를 만들어낸다.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즉시 모여 새로운 놀이를 즐긴다. 혼자 참가해 생면부지의 타인들과 모이자마자 오랜 친구처럼 게임을 한다. 이날 물싸움대회에도 혈혈단신으로 참가한 이가 30명 가까이나 됐다. 경기 성남시에서 1시간 반가량 버스를 타고 와 혼자 참가한 대학생 조영민 씨(19)는 “팀 단위로 물싸움을 벌이는 방식이라 쉽게 다른 사람과 친해질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온라인 ‘행동 댓글’ 놀이도 등장했다. 자신의 댓글이 추천을 많이 받아 ‘베플(베스트 리플)’이 되면 시내 한복판에서 혼자 삼겹살을 굽겠다는 엉뚱한 공약을 내걸고 실제로 이를 실천하는 모습을 구경하러 모여든다.
이날 물싸움대회를 연 주최 측은 1월에는 전국눈싸움대회를 열기도 했다. 운영진은 강원 평창군에서 대회 당일 새벽 1.5t 트럭 3대를 동원해 눈을 공수해왔고 인터넷을 통해 모인 시민 100여 명이 눈싸움을 즐겼다. 유통업계 직장인인 주최자 강대훈 씨(29)는 “2010년 페이스북을 통해 전 세계 각지에서 동시에 베개 싸움을 여는 것을 보고 우리도 이런 이벤트를 열면 사람이 많이 모여서 재밌게 놀 수 있을 것 같아 기획했다”며 “수익을 내기 위한 사업이 아니라 그저 모여서 즐기려고 이벤트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노래방에서 12시간 놀기, 시내버스로 서울에서 부산 가기, 24시간 단식하고 고기뷔페 가서 많이 먹기 등 다양한 놀이문화를 함께 체험하고 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다수가 함께 모여 직접 살을 맞대고 놀이문화를 즐기는 풍경은 인간관계의 단절에 목마른 요즘 세대가 새롭게 만들어 낸 현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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