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해안국립공원 내 학암포 해변을 방문한 이모 씨(37)는 1년 전과는 무언가 달라진 풍경에 어리둥절했다. 원래 학암포는 잔잔한 파도와 함께 드넓게 펼쳐진 고운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해변.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해안선이 육지 쪽으로 수십 m나 후퇴한 것이다. 모래 절벽은 눈에 띄게 높아졌고 멀쩡하던 소나무 방풍림은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다. 안면도 창정교 해변도 같은 기간에 해안선이 후퇴하고 높이가 낮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 사라진 축구장 크기의 해변
16일 환경부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국립공원연구원 유류오염연구센터는 2011년 5월부터 1년간 학암포와 안면도 창정교 해변의 침식 및 퇴적 현상을 집중 조사했다. 그 결과 학암포 해변은 해안선이 1년 전에 비해 육지 쪽으로 평균 21.78m 후퇴했다. 평균 표고(標高)는 32cm 깎여 나갔다. 이에 따라 해변 면적도 8만8852m²(약 2만7000평)에서 7만5852m²(약 2만3000평)로 축구장 1개 크기보다 조금 큰 1만3000m²(약 4000평)가량이 줄었다.
안면도 창정교 해변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해안선은 30.75m나 후퇴했고 평균 표고는 43cm나 침식됐다. 해변 면적은 1만1633m²(약 3500평)에서 6360m²(약 1900평)로 절반 가까이 축소됐다. 이번 분석은 1년간 대상 해변을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정밀 측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동안 해안침식의 실태를 지적한 연구는 많았지만 침식 규모를 정확히 측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안침식은 모래 채취와 방파제, 도로 등 인공시설물의 영향이 크다. 연구센터 측도 침식 원인에 대해 당초에는 ‘무분별한 해안 개발 가능성’을 제기하는 자료를 발표했다. 그러나 뒤늦게 “인공시설물보다는 자연적인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을 바꾸는 등 매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1년 사이에 해안선을 수십 m나 전진 또는 후퇴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은 기후변화다. 태풍 증가와 게릴라성 집중호우 등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있다. 박정원 유류오염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1년 사이 20∼30m씩 해안선이 바뀌고 있는 셈”이라며 “꽃지해변 등 다른 곳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 해안침식은 전국적인 현상
1년에 수십 m씩 해안선이 육지로 후퇴한다면 이론적으로는 언젠가 한반도가 없어져야 하지만 아직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센터 측은 설명했다. 침식뿐 아니라 퇴적 현상도 주기적으로 나타나면서 손실된 해변이 어느 정도 복구되기 때문. 문제는 자연 스스로의 복구능력을 인간이 만든 각종 인공시설물이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포대 해변의 경우 올여름을 앞두고 백사장 150m가량이 침식됐다. 강원 동해안 해변의 침식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해안침식이 심각한 수준인 곳은 2010년 8곳에서 지난해 13곳으로 늘었다. 또 해안침식 등의 여파로 국내 해안선 길이는 1910년 7560km에서 2009년 5620km로 100년 동안 1940km나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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