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쏟아졌다. 제주올레 코스 이어 걷기 행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었지만 24일 오전 올레 1코스 시작점인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초등교에는 사단법인 제주올레(이사장 서명숙) 직원들과 자원봉사자, 일반 참가자 50여 명이 비옷을 입은 채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날은 올레 1코스에서 살해된 강모 씨(40·여)의 시신이 지난달 23일 발견된 지 33일째 되는 날이라 참가자들의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서 이사장은 “그토록 걷고 싶었던 올레길을 한 코스도 다 걷지 못한 그녀를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우리가 대신 걸으면서 그녀의 넋을 위로하고, 이 길을 낸 초심을 다지고 싶다”고 말했다. 곧이어 고인의 영혼을 위로하는 묵념을 했다. 폭우 때문에 물길로 변한 시멘트 농로를 걷자마자 신발이 흥건히 젖었다. 마음만큼이나 발걸음도 무거웠다.
물길을 헤치며 30여 분간 걷다 보니 말미오름(해발 146m·작은 화산체) 정상에 도착했다. 사방은 폭우와 안개로 시야가 막혔다. 얼굴을 때리는 빗줄기가 아프게 느껴졌다. 오름 하산 길은 사건 현장 주변. 모두 말이 없이 숙연한 발걸음을 이어갔다. 서울에서 무작정 제주로 내려온 이모 씨(34·여)는 “올레길에서 제주의 새로운 재미를 느껴 정착할 생각을 갖고 있던 가운데 사건 소식을 접했다”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말미오름을 뒤로하고 농로가 이어졌다. 발목까지 찰 정도로 물이 쏟아졌다. 위험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발을 내디딜 때마다 ‘첨벙첨벙’ 소리가 났다. 구좌읍 종달리 아늑한 마을을 지나자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이 뻥 뚫리듯 시원스레 바다가 펼쳐졌다. 파도가 억센 소리를 냈지만 몸과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육모 씨(27)는 “어떤 삶을 살지 고민하다 올레길을 걷게 됐다”며 “피살 사건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올레는 사색과 치유, 그리고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빗물과 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시흥초등학교에서 광치기해변까지 15.6km에 이르는 1코스 걷기 행사는 무사히 끝났다. 제주올레 측은 다음 달 15일 제주올레 마지막 코스인 21코스 개장을 앞두고 1코스부터 정규 코스를 하루에 한 코스씩 걷는 이어 걷기를 마련했다. 매일 오전 9시 30분경 자원봉사자인 ‘이음단’ 7명이 선두에 서며 일반 참가자들도 함께 걸을 수 있다. 21코스를 개장하면 제주 섬을 한 바퀴 도는 정규 코스가 완성된다. 2007년 9월 1코스를 개장한 이후 5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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