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주택가에서 전자발찌를 찬 채 성폭행을 시도하다 30대 주부를 살해한 서진환(42)은 범행 직전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까지 복용하는 등 사전에 치밀하게 성폭행을 준비한 것으로 확인됐다.
28일 경찰에 따르면 서진환은 범행 당일 새벽까지 밤새워 음란동영상을 본 뒤 아침 일찍 성폭행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 비아그라를 복용했다. 평소 스트레스성 발기부전 증상이 있었던 그는 성폭행을 작심하고 약까지 챙겨 먹은 것이다. 서진환을 면담한 경찰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 요원) A 경사는 “평소 모든 관심이 오로지 성욕에만 집중돼 있는 전형적인 강간범”이라고 진단했다.
경찰 조사 결과 서진환은 피해자를 살해하기 앞서 얼굴과 옆구리, 배 등을 수십 차례 때린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피해자는 칼에 찔리기 전 서진환의 무자비한 폭행으로 이미 저항력을 잃은 상태였다. 사건 후 발견된 시신은 얼굴 대부분이 피멍으로 검게 부어올라 유족조차 쉽게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A 경사는 “잔혹한 살해 수법으로 볼 때 좌절된 성욕이 필요 이상의 과도한 폭력성으로 변화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간살해범들은 흔히 피해자가 소리를 지를 수 없도록 베개로 머리를 누르거나 목을 조르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질식해 숨지게 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서진환은 피해자의 저항 여부와 무관하게 칼을 휘두르는 극단적 폭력을 가해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보였다. A 경사는 “상습 강간범인 서진환은 피해자의 정서적 육체적 아픔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고 피해자를 자신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대상으로만 봤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진환의 사례처럼 성범죄는 강압적 성관계뿐 아니라 폭행으로 인한 상해나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성폭행범은 상해나 살인 등은 피해자가 격렬히 저항해 이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진 일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얄팍한 변명이라고 지적한다. 성폭행 중 벌어지는 폭행은 성욕뿐 아니라 내면의 분노, 평소 억압됐던 욕구를 일시에 표출하는 일종의 ‘의식’으로 대부분 사전에 계획된다는 것이다. 성폭행은 피해자를 학대해 물리적 심리적으로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단순히 성욕 해소를 위한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강은영 연구원은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볼펜이나 젓가락만 들고 있어도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경우가 많아 죽음을 각오하고 저항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며 “저항 의사가 없는데도 피해자에게 일부러 주먹이나 흉기를 휘두르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상대를 지배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르는 가해자들은 폭행 살인 등 추가 범죄는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피해가 커지면 경찰의 집중 수사 대상이 돼 성범죄 행각을 이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성폭행 범죄 현장에서 흔히 발견되는 테이프, 칼, 노끈 등의 증거물들을 ‘강간범 세트’라고 부른다. 서진환도 이런 장비를 치밀하게 준비했다. 피해자를 결박할 청테이프와 얼굴을 가릴 청색 마스크,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과도를 갖췄다. 경찰 관계자는 “서진환이 그동안 세 차례 성범죄를 저지르며 나름대로 정교하게 범행 수법을 익힌 것 같다”며 “청테이프는 사전에 범행을 계획했다는 확실한 증거”라고 말했다.
이처럼 성폭행의 상당수는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돼 저질러진다. 성폭행범들은 흔히 “노출이 심한 옷차림의 여성을 보고 순간적으로 충동을 못 이겨 범죄를 저질렀다”고 진술하지만 이는 피해자에게 책임의 일단을 돌리려는 변명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서진환의 사례가 보여 주듯 단순히 성욕을 채우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쌓여 온 성적 좌절감과 열등감을 여성에 대한 폭행이나 살인을 통해 표출하는 계획적 성폭행범이 많아진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성폭행범에 대처하는 대책과 처벌도 그에 맞게 강화되어야 함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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