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렉싱턴호텔 15층. ‘중소기업 무너뜨린 키코(KIKO·환율 변동 관련 파생금융상품)’라는 플래카드 아래 앉은 중년 남성들은 후련한 것 같기도 하고 서글픈 것 같기도 한 묘한 표정이었다.
이들은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의 공동위원장. 은행과 금융당국, 그리고 사법부를 상대로 4년이나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을 해오다 첫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23일 서울중앙지법은 “은행은 기업들이 청구한 금액의 60∼70%를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공대위 사무국 직원에게 “자축하는 자리 아니냐”고 묻자 “겨우 기업 4곳이 승소한 것인데 자축이라고 하기에는 좀…”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심 판결은 대부분 중견·중소기업이 패소했고, 135개 기업이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공대위가 처음 출범할 때에는 217개 기업이 참여했는데 지금은 130여 곳만 남았다. 40여 곳은 그 사이에 망했고, 다른 기업들은 은행과 타협했다. 공대위 한 공동위원장은 “돈줄을 쥔 주거래은행이 소송 취하를 ‘권유’하는데 어떤 기업이 버티겠나, 원망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아무도 소송이 4년 가까이 이어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극심한 피로 속에 집행부는 여러 차례 바뀌었다. 3기 위원장의 회사가 6월 부도가 나면서 4기 집행부는 공동위원장 체제로 꾸려졌다.
이날 행사에는 키코 피해로 회사를 폐업하고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진 뒤 끝내 숨진 임모 전 BMC어패럴 대표의 부인도 참석했다. 2010년 첫 재판에서 진 뒤 “이 길로 은행 앞에 가 분신하겠다”고 했던 박용관 전 동화산기 대표도 있었다. 동화산기의 주인은 이제 은행이 됐다.
공대위 부위원장을 맡은 조붕구 코막중공업 대표는 “은행과 금융감독기관, 법원 앞에서 수십 번이나 시위를 했다. 집회를 마치고 걸어가는데 경찰이 ‘행진하지 말라’며 해산하려 하자 ‘한국의 모든 공권력이 우리를 버리는구나’ 싶어 왈칵 눈물을 쏟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야 한국 사회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희미하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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