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생활 20년에 올해가 최악입니다. 정반대의 공문을 받아서 대책회의하고 감사 받느라 바쁜데 교육은 무슨…. 사장님 두 명 모시고 있는 월급쟁이로 보면 됩니다.” 정부와 좌파 교육감들의 갈등이 계속되면서 서울 경기 전북 지역의 교사 사이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1학기에 학생인권조례로 혼란을 겪은 데 이어, 2학기에는 학교폭력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문제로 시달린다는 말이다.
전북 일반계 고교의 3학년 담임인 A 교사는 지난달 밤늦게까지 수시모집 추천서를 쓰다가 진학실에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학부모라고 밝힌 여성은 “지금 뉴스에 학교폭력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안 쓴 고등학교 애들은 불리하다고 나오고 있는데 우리 학교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교육청에서 못 적게 한다”고 대답하자 이 여성은 다짜고짜 “당신 자식 아니라고 장난하느냐. 우리 애가 떨어지면 고소당할 줄 알라”고 거칠게 말했다.
며칠 뒤 A 교사는 교과부의 공문을 보고 참담함을 느꼈다. 학생부에 학교폭력을 기재하지 않는 교사는 중징계하겠다는 내용. 곧이어 교과부의 감사가 시작돼 서류 작업까지 떠안았다.
교장의 방침에 따라 A 교사는 학생부 작성 시한인 지난달 31일까지 학교폭력 관련 내용을 학생부에 적지 않았다. 그는 “정시모집 때도 2학기 학생부를 두고 또 이 짓을 하게 될 거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경기도 인문계고의 생활지도담당 B교사는 혀를 찼다. 겨울방학에 연수를 받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에 따라 자율성을 보장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 “인권조례 지켜라” vs “학칙으로 막아라”… 교사는 한숨 ▼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개학을 앞두고 사나흘 간격으로 공문이 내려왔다. 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를 지키라고 지시했다. 따르지 않으면 행정 재정 제재를 한다고 압박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칙을 자율적으로 제정하라는 안내문을 보냈다.
그는 개학날 염색한 학생의 머리카락을 잡고 야단을 쳤다가 지역 교육청에 불려갔다. 수업 중에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신고한 뒤였다.
4월부터는 교과부의 닦달이 시작됐다. 개정된 시행령과 법을 따르라는 말이었다. 학칙 논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라는 주문도 늘었다.
그때마다 생활지도담당자 회의, 인근 학교 공청회, 학교운영위원회, 학생 토론회를 열었다.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아 학생 학부모와
함께 회의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정책을 바꾸려면 교사와 학생들에게 최소한 1년, 아니 한 학기만이라도 준비할 기간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 양쪽에서 다른 정책을 내놓으려면 시범학교라도 운영해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 A고의 1학년 연구담당인 K 교사도 3월에 수업을 제대로 준비한 기억이 없다. 주 5일제 전면 시행으로 토요프로그램
일정표를 수십 번 다시 짜느라 심신이 피곤했다. 교과부는 스포츠 프로그램을 늘리라고 했지만, 예산을 지원하는 교육청은 체육
강사비를 줄 수 없다고 했다. 매주 토요일 출근해 교육청에 현황을 보고하느라 주말에도 편히 쉬어 보지 못했다.
그는 한숨을 쉬며 현장의 고충을 알아 달라고 얘기했다. “교과부의 정책과 교육청의 예산이 따로 놀면 교사의 잡무는 두 배가 아니라 네 배로 늘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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