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4일 오전 7시경 이명박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들이 경기 부천시 원미구 심곡동 부천대 캠퍼스를 찾았다. 이 대학 대회의실에서 ‘경제위기에 따른 청년실업대책’을 주제로 국무회의가 열린 것. 한방교 총장(83)은 “청와대에서 ‘부천대가 국무회의 장소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통보받고 깜짝 놀라 그 배경을 알아보니 높은 취업률 때문이었다”며 “대통령과 장관들이 교육 및 취업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31개 학과에 8000여 명이 재학 중인 부천대는 경기와 인천지역 대학 가운데 졸업생 취업률이 가장 높은 대학으로 유명하다. 교육과학기술부가 8월 공개한 ‘2012년 고등교육기관 취업현황’에 따르면 부천대는 취업률 66.4%로 전국에서 졸업생 2000명 이상을 배출하는 대학(‘가’그룹) 가운데 5위에 올랐다.
○ 돋보이는 취업 프로그램
부천대는 높은 취업률 비결로 ‘취업 및 직무능력 강화 프로그램’ 같은 맞춤형 취업교육을 꼽는다. 대다수 대학에서 취업과 관련해 면접교육이나 박람회 등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것에 비해 6개월 동안 체계적으로 학생들의 취업을 돕는다.
교육과정을 2, 3년제로 나눠 운영하고 있는 부천대는 2, 3학년에 진학하면 이 프로그램에 따른 취업교육을 받을 수 있다. 우선 학과별로 1일 캠프를 열어 스펙과 포트폴리오 등을 적는 진단지를 작성한다. 교수들은 상담을 통해 취업능력을 파악한 뒤 그 결과에 따라 학생들을 4개 그룹으로 나눠 개별적으로 관리한다.
바로 취업이 가능한 수준인 A그룹에는 기업체 구성원으로서의 교육을 중점적으로 실시한다. 교육을 받아야 취업이 가능한 B그룹은 서류작성과 면접 등에 필요한 역량교육을 통과하면 취업을 알선한다. 반면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C그룹은 개별 컨설팅을 통해 진로를 제시한다. 취업을 희망하지 않는 D그룹은 상담을 통해 창업 등 다양한 진로를 모색하게 된다. 박영훈 취업정보센터장(43·토목과 교수)은 “프로그램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가 90% 이상 나왔을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 글로벌 경쟁력 키우는 어학·인성교육
부천대는 40명이 넘는 원어민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을 가르친다. 모든 학생은 매일 1교시에 외국어 강의를 듣도록 의무화했다. 교양은 물론이고 전공 강의를 원어민 교수가 진행하는 학과도 있다. 점심시간에는 캠퍼스에 설치된 ‘잉글리쉬 카페’에서 원어민 교수와 자유로운 토론을 펼친다. 대학 자체적으로 토익시험을 실시하고 있으며 외국어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방학 기간에 집중적으로 특별강의를 듣는다.
이와 함께 학생들에게 인성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기업체들이 갈수록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인성과 사회성을 중요하게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겸손, 협력과 소통의 의미를 가르치는 ‘리더십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해외봉사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올해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가 선정한 ‘라이프가드봉사단’에 선정됐으며 교육과학기술부가 모집하는 한국 대학생 해외봉사단에 학생들을 파견하고 있다.
○ 4년제 학사학위 과정 운영
부천대는 전문학사 과정 외에도 4년제 학사학위 과정도 운영하고 있다. 전문대 졸업자에게 직업실무와 연계된 심화교육을 통해 이론과 실무능력을 갖춘 전문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제도. 이에 따라 전문대 졸업자가 1, 2년간 3, 4학년의 전공심화과정을 이수할 경우 학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 부천대는 21개 학과에서 학사학위과정을 야간으로 운영한다.
산업체 위탁생 전문학사 과정도 운영한다. 고교 졸업자로 4대보험이 적용되는 산업체에서 9개월 이상 근무자가 대상으로 수능시험을 보지 않고 입학할 수 있다. 전문학사 학위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학사학위과정에도 입학이 가능하다. 졸업한 뒤 4년제 대학에 편입할 수도 있다. 정부가 지난해 승인한 산업체 위탁생 모집정원은 1480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 2013학년도 입학전형
부천대는 공학과 예·체능, 자연과학, 인문사회 등 4개 계열 31개 학과(2, 3년제 혼합)에서 2696명을 선발한다. 내년도 입학전형의 특징은 항공 및 관련 서비스 분야에 진출할 수 있어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높은 항공서비스과(정원 80명)를 신설한 것이다. 수시1, 2차와 정시 등 세 차례에 걸쳐 모집하며 면접에서 외국어 능력을 평가한다.
고교 때 특정 전문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한 학생들을 발굴해 면접만으로 선발하는 전형을 확대한 것도 특징이다. 이미 2012학년도에 만화&2D영상그래픽전공과 3D영상그래픽전공에서 면접전형을 통해 신입생을 뽑았으며 올해 쥬얼리디자인전공과, 실용사진전공, 호텔외식조리과 등 모두 6개 학과에서 면접전형을 추가로 실시한다. 모바일통신과와 정보통신과를 정보통신과로 통합했다. 간호학과의 경우 기존 20명에서 30명으로 정원이 늘어났다.
다음 달이면 서울지하철 7호선 부천 연장구간이 개통되기 때문에 수도권 일대 재학생들의 통학이 한결 수월해진다. 1958년 설립된 소사공과기술학교가 모체인 부천대는 지금까지 졸업생 6만8000여 명을 배출했다. 032-610-0700 ▼ “학생에게 전문성 심어주는게 최우선 연내 제2캠퍼스 완공으로 새 도약” ▼
■ 한방교 부천대 총장
“학생과 학부모가 만족하는 수도권 최고의 직업교육 중심대학으로 정착시키겠습니다.”
한방교 총장(사진)은 캠퍼스에 출근하면 수시로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유명하다. 학생들이 체감하는 교육에 대한 만족도를 현장에서 듣기 위한 것. 정기적으로 교육만족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학생들의 의견을 대학 운영에 반영하고 있다. 매달 한 차례씩 교육수준 향상 방안을 토론하는 교수간담회를 주관한다. 이처럼 한 총장이 교육과정을 꼼꼼하게 점검하는 이유는 내실 있는 직업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졸업할 무렵 사회 진출에 필요한 전문성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다. 한 총장은 “전문성이 없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며 “평균수명이 늘어나 인생의 후반기가 길어지는 요즘 시대에는 전문성을 갖춘 사람만이 자신이 희망하는 직업을 갖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교직원들에게 “학생 위에 군림하는 대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특히 교수들은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적성을 살려 취업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성을 갖춘 직업교육에 필요한 교육인프라를 확충하는 것도 그가 주도하고 있다. 올해 개설된 간호과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최첨단 현대식 실습실을 갖춰 84 대 1이라는 높은 응시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부천대는 12월까지 부천시 소사구 계수동 일대 18만6646m² 규모의 터에 제2캠퍼스를 착공한다. 한 총장은 “제2캠퍼스가 완공되면 산학협력 연수시설과 해외 유학생을 위한 기숙사 시설도 갖추게 된다”며 “최첨단 친환경 캠퍼스 조성을 계기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설립자인 몽당 선생의 장남으로 부천이 고향인 그는 1955년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뒤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9년 3월 부천공업전문대 초대 학장에 취임한 뒤 현재까지 대학을 이끌어오고 있다. 1994∼98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을 지냈으며 1999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 설립자 몽당 한항길 선생 일제때 독립운동 옥고… 평생 양복 한벌로 생활
도심에 들어선 현대식 건물이 인상적인 부천대 도서관 1층에 가면 정심관(正心館)이 눈에 들어온다. 이 대학 설립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몽당(夢堂) 한항길 선생(1897∼1979·사진)의 삶과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기념관이다.
구한말 경기 부평군 문학면(인천 연수구 동춘동)에서 태어난 몽당은 유년기 서당교육을 받다가 낙영학교와 장화의숙 등을 거쳐 1917년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청년기인 1919년 3월 1일 파고다공원에서 열린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뒤 시위를 계속해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감옥에서 풀려난 뒤 몽당은 교원양성소 입학시험에 합격해 서울 보인학교에서 1929년까지 교편을 잡았다. 그 뒤 연초영업소에서 근무하던 그는 광복을 맞은 1945년 경기 안양시에 안양직물주식회사를 차려 기업 운영에 나섰다. 평생 양복 한 벌로 살 만큼 근검절약을 실천했던 그는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심으로 1948년 정부가 주는 효자상을 받기도 했다.
6·25전쟁이 끝나자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업인력 양성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소사공업기술학교를 설립했다. 당시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사람다운 사람, 기술자다운 기술자’가 될 것을 강조한 그의 지론은 현재까지 교육이념으로 계승되고 있다.
1978년 학교법인 한길학원을 세워 초대 이사장에 취임하며 부천공업전문대를 설립한 그는 이듬해 작고했다. 1990년 3·1운동에 참여한 공훈으로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됐다. 1999년 부천시는 그를 ‘부천을 빛낸 인물’로 선정한 뒤 시청 앞 중앙공원에 몽당의 전신상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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