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인이 어느 날 외출했다가 불쾌한 일을 당하고 매우 언짢은 심정이 되어 귀가했다. 집에서 혼자 울화를 삭이며 앉아 있던 그는 한순간 자신의 마음이 평온해지고 행복감마저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부인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기분을 180도 바꿔준 주인공은 바로 눈앞에 있는 자개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선을 빨아들이는 칠흑 같은 옻칠 바탕에 영롱한 빛이 반짝이는 자개농을 무심코 바라보는 동안, 그 고요한 아름다움에 젖어들어 불쾌한 기분을 잊어버린 것이다.
다음 날 부인은 자개농을 만든 장인에게 찾아가 두 딸의 혼수품으로 자기 것과 똑같은 자개농을 미리 맞추었다고 한다.》
그렇다. 진짜 명품에는 이렇듯 사람을 위로해주는 힘이 있다. ‘브랜드’를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명품은 종종 다른 사람의 부러움과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 과시하는 도구가 되지만, 진정한 명품은 주변을 아름답고 고상하게 꾸며주는 훌륭한 기물(器物)이다.
특히 마음 편히 쉬는 집을 이런 전통 명품으로 꾸미면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심성마저 순화된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사랑채 기물을 극히 제한하고, 걸어두는 그림도 채색화보다는 수묵화로, 그리고 경첩이나 손잡이, 고리 등을 장식하는 장석도 화려한 백동 대신 거무튀튀한 무쇠 장석으로 달도록 했다.
○ 전통가구, 인테리어하기 더 쉽다
우리 전통 가구와 수공품으로 실내를 꾸미는 것은, 사실 서양가구로 공간을 구성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서양은 (벽난로가 실제로 있든 없든) 언제나 벽난로를 염두에 두고 공간을 구성한다. ‘벽난로’에 해당하는 한 곳을 중심으로 의자나 소파, 탁자 등을 적절히 배치하면서 공간을 채운다. 그런데 우리는 가구를 모두 벽에 붙이고 가운데는 되도록 시원하게 비워둔다. 전통 가옥은 공간이 좁기 때문에 넓게 쓰기 위해서였다.
‘가구는 벽에 붙이고 가운데는 시원하게 비워두는 것’, 그것이 우리 전통 실내 구성의 기본이다. 이 기본 정신은 이미 우리에게 깊이 배어 있어 아파트에서 서양식 침대와 식탁을 놓고 살면서도 가구라면 무조건 벽에 붙인다.
그런데 입체적 공간 구성에 어울리는 서양 가구를 무조건 벽에 붙여두면 공간이 밋밋해진다. 서양 가구로 꾸민 우리나라 아파트 인테리어가 하나같이 재미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 전통가구로 실내를 꾸밀 때는 별 다른 고민 없이 모든 가구를 벽에 붙여두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높이가 낮은 전통가구는 벽에 붙이면 공간이 한결 넓어 보인다. 그래서 식구가 줄어 작은 집으로 이사했거나 신혼이나 독신가구처럼 좁은 공간에서 살 경우, 전통가구를 활용하면 답답하지 않으면서도 아늑한 실내를 만들 수 있다.
전통가구는 미적인 면뿐 아니라 수납 활용도에서도 뛰어나다. 좁은 구석을 장식하는 콘솔과 비교하여 반닫이나 단층장(머릿장)은 위에 화분이나 액자, 거울 등 장식품을 올려두면서 안에는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둘 수 있다. 낮고 긴 문갑이나 키 큰 사방탁자는 공간을 덜 차지하면서도 그 자체가 모두 수납공간이다.
한 가지 신경 써야 할 점은, 요즘 가옥이나 아파트는 구조와 창의 높이가 모두 입식생활에 맞춰 설계되었기 때문에 좌식생활에 맞는 전통가구를 배치할 때 이를 잘 고려해야 한다.
다행히 방 창문이 낮게 되어 있다면 창문 아래 벽면에는 긴 문갑을 두면 더할 나위가 없다. 창문이 높이 달렸을 경우에는 문갑 위에 화분이나 도자기, 서류함, 경대 등을 두면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 ○ 화려한 가구는 안방에, 서재는 수수하게
전통가구도 종류가 많다. 자개나 칠보, 화각 등으로 장식한 비교적 화려한 장롱이나 경대 등은 여성이 주로 쓰는 안방에 두고,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린 수수한 가구는 남성이 쓰는 공간에 두면 좋다. 반닫이나 함, 궤, 문갑, 사방탁자 등은 어느 공간에든 다 잘 어울린다.
삼층장, 약장, 책장, 찬탁, 의걸이장 등 전통가구 중에서도 키가 큰 편에 속하는 것은 안방이나 거실, 서재까지 두루 놓을 수 있지만 특별히 약장과 찬장은 거실에 두면 분위기가 한결 살고, 서재에는 중후한 느낌의 책장과 의걸이장을 놓아두면 품위 있는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전통가구로 실내를 꾸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장식 위주로 배치하기보다 실제 가구의 쓰임새에 맞는 공간에 두고 쓰면서 관리하는 것이다. 의걸이장은 옷장으로 쓰고, 서안이나 경상은 서재에 둔다. 뒤주는 콘솔로 이용할 수 있지만, 쌀을 보관하는 데도 좋으니 부엌에 두고 실제로 쓰면서 몇 가지 장식품을 올려두는 게 낫다.
또 그릇을 두는 찬탁은 실제로 습기에 강한 소나무로 되어 있어 부엌에 두고 써도 무방하다. 다만 찬장은 이제 쓰임새가 없으므로 부엌보다는 거실이나 서재에 두고 책장이나 수납장으로 써도 좋다. 서류함이나 소반, 반짇고리 역시 실제로 사용하면서 간혹 기름을 먹여주면 쓸수록 정감 가는 가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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