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고수” 교도관들 속여 5억 가로채 호화 수감생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8일 03시 00분


교도관 비호아래 범털행세… 고기 구워먹고 영화도 시청
출소뒤 車-카드도 받아

2006년 12월경 전남의 한 교도소. 박모 씨(당시 30세)가 이감돼 왔다. 사기 혐의로 8년형을 선고받은 박 씨는 일반 재소자들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노역을 하고 쉬는 시간이 되면 늘 증권서적, 경제지를 봤다. 증권 모의투자에서 큰 수익을 남기기도 했다. 재소자들과 교도관들 사이에는 그가 ‘투자고수’라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을 들은 교도관 A 교위(당시 43세)는 귀가 솔깃했다. A 교위는 당시 증권 투자로 날린 수천만 원을 만회하기 위해 애가 탔다. 그는 박 씨가 “돈을 맡기면 크게 불려주겠다”고 하자 마음을 굳혔다. A 교위는 2007년 1월부터 29개월간 41차례에 걸쳐 500만∼3500만 원씩 모두 5억5971만 원을 박 씨 어머니 계좌에 송금했다. 주변 돈까지 탈탈 털어 보냈다. 형제들 예금과 대출금까지 포함돼 있었다. 수익은 없었지만 박 씨는 “투자가 잘돼서 돈이 불어나고 있다”고 해 A 교위를 안심시켰다.

박 씨는 A 교위에게서 받은 투자금으로 교도소에서 호의호식했다. 착용이 금지된 지퍼가 있는 점퍼를 입고 다녀 재소자들 사이에서는 ‘범털’(돈이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수감자를 가리키는 은어)로 불렸다. 농장 노역을 나가면 또 다른 교도관 B 교위(당시 40세)에게 용돈 50만∼200만 원을 주고 담배까지 사 피웠다. 박 씨는 B 교위의 휴대전화로 외부에 전화를 하거나 PMP로 영화까지 봤다. 점심으로 고기까지 구워먹었다.

2009년 5월 박 씨가 출소하자 A 교위는 최고급 승용차를 선물하고 신용카드 5장까지 만들어 줬다. 박 씨는 이 신용카드로 5000만 원이나 썼다. 그러나 불어났다던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A 교위는 투자금을 모두 날리고 뒤늦게 사기 당한 걸 알았지만 재소자와 돈거래를 금지하는 내부규정 때문에 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전남지방경찰청은 17일 박 씨가 교도소에서 특혜를 누렸다는 재소자들의 소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B 교위가 박 씨 등으로부터 뇌물 1083만 원을 받은 것을 확인하고 구속했다. A 교위는 경찰에서 “황당한 사기였는데 내가 왜 속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날 사기 혐의로 박 씨도 구속했다. 박 씨는 고졸로 단 한번도 증권에 투자해본 적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교도관#사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