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는 71세 여성이다. 중풍과 치매로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고 했다. 의사소통이 힘들어 고개를 끄덕이거나 좌우로 흔드는 정도. 게다가 중풍이 여러 차례 재발했다고 한다. 그는 2009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 3등급, 2010년 8월 1등급 판정을 받았다. 올 7월까지 요양도우미가 집을 방문해 수발하는 서비스를 받았다.
이런 A 씨가 지난해 11월 자녀 내외와 함께 베트남 하노이를 6일간 다녀왔다. 칠순을 기념한 여행이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뒤늦게 A 씨의 등급을 재조사했다.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고 서비스 대상에서 제외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2008년 7월 시행된 이후 이처럼 부정수급으로 의심할 만한 100여 건의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 제도 시행 후 올 7월까지 부정수급자로 적발된 사례는 8건에 불과했다. 이번 적발은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건보공단에 관련 자료를 요구한 뒤 공단이 법무부와 경찰청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면서 뒤늦게 드러났다.
동아일보가 19일 신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 해외출입국 현황’에 따르면 2010년 1월∼2012년 5월 중증질환자에 해당하는 1, 2등급 가운데 77명이 미국 중국 태국 베트남 등 외국에 다녀왔다. 40명은 가족 여행과 친지 방문, 30명은 신병 치료가 목적이었다.
1등급은 일상생활에서 전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환자다. 증상대로라면 대부분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한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니까 보호자가 동반하더라도 해외여행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부정수급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이번 조사 결과 1등급 중 8명은 치료가 아닌 가족 여행, 친지 방문으로 해외에 다녀왔다. 치료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12회나 해외에 다녀온 사례도 있었다. 1등급인 전립샘(전립선)암 환자 B 씨(73)도 3월에 5일간 태국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자동차 운전면허를 취득한 1∼3등급 수급자도 25명이나 됐다. 뇌 질환을 앓는 장애인 C 씨(57)는 2010년 10월 1등급 판정을 받았다. 그가 받은 서비스(급여) 비용은 2202만 원. 하지만 사실은 멀쩡했다. 지난해 10월 대형버스를 운전할 수 있는 1종 대형 자동차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장애인 면허라는 조건조차 달지 않았다. 그런데도 올 1월 등급 재조사를 무난히 통과했다. 건강보험공단의 심사가 허술했다는 말이다. 1등급인 D 씨(70)도 6월에 1종 보통 운전면허를 땄다.
신 의원은 “중증환자인 1등급이 운전면허까지 취득했다면 부정수급일 확률이 높다”며 “그동안 건보공단이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은 “부정수급 의심 사례가 무더기로 드러난 만큼 철저히 재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수급자 재심사를 청구하면 절반 정도는 등급이 올라가는 점도 문제다. 2008년∼2012년 6월 말 등급판정 대상자 133만1763명 중 27만2119명(20.4%)이 다시 등급판정을 해달라고 요청했고 13만6082명(50%)이 재신청 뒤 상향 조정됐다. 하향 조정은 1만1706명(4.3%)에 불과했다. 판정이 너무 느슨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등급판정이 느슨하면 결과적으로 부정수급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는 2008년 33만6579명에서 올해 5월 누적 58만1503명으로 크게 늘었다. 건강보험공단이 요양기관에 지급한 급여도 2008년 4267억 원에서 지난해 2조5881억 원으로 증가했다.
보험료를 내지 않은 체납자에 대한 관리도 허술했다. 6개월 이상 요양보험료를 내지 않은 경우는 1720명, 2년 이상 체납은 295명이었다. 대부분 저소득층이지만 재산이 3억 원 이상인 경우도 27명이었다. 자산이 10억 원 이상인 G 씨(81)는 1년 치가 넘는 요양보험료 48만7110원을 내지 않았으나 공단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종합소득세로 1만5613원을 납부했다. 또 규정상 요양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 등에게 지급하는 현금 급여와 시설이용 급여를 동시에 탈 수 없으나 올해 8월까지 함께 탄 사례가 85건에 달했다. :: 노인장기요양보험 ::
중증질환을 앓는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목욕, 배설, 취사, 청소,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보험제도. 65세 미만이라도 치매와 뇌혈관질환 등 노인성 질환이 있으면 심사를 통과한 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대상자가 되면 노인의료복지시설에 들어갈 수도 있고, 방문 도우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비용은 1인당 최대 월 87만8900∼114만600원. 환자는 이 금액의 15∼20%를 부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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