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16년간 150만원 훔쳐 15년간 옥살이 ‘현대판 장발장’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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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7시 반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상습절도 혐의로 피고인석에 선 배모 씨(44)에게 담당 재판부(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설범식)는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배 씨가 법정에 선 것은 이번이 8번째다. 취객의 지갑을 훔친 죄에 비해 중형이 내려졌지만 상습절도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28세이던 1996년 처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지하철역에 쓰러져 있던 취객의 2만5000원짜리 서류가방을 훔친 혐의였다. 가방에 현금은 없었다.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자마자 또 취객의 지갑에 손을 댔다. 직불카드와 주민등록증만 들어있었다. 그 일로 교도소에서 10개월을 보냈다.

배 씨는 출소 후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새 삶을 살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전과자 딱지 탓에 늘 생활고에 시달렸고 다시 범죄의 늪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출소하면 다시 절도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취객의 물건에만 손을 댔지 흉기나 위력은 쓰지 않았다. 훔친 돈 총액은 150만 원이 채 안 되지만 총 15년 8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04년 반지갑(시가 10만 원)과 휴대전화(시가 45만 원)를 훔친 게 가장 큰 범죄였다.

법조계에서 “상습절도에 대한 형량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범죄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람을 기준으로 처벌하는 것은 법 원칙에 어긋나며 세계적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강력범죄와 달리 생계형 범죄는 처벌보다는 재사회화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법무부는 이런 지적을 반영해 2010년 형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18대 국회가 회기 만료까지 처리하지 못해 폐기됐다. 법무부는 올해 말 입법예고를 목표로 다시 법안 제출을 검토하고 있다.

“한 달 전 교도소에서 나올 때 받은 영치금 30만 원으로 22만 원짜리 월세방을 구하고 남은 8만 원으로 생활해왔는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또 남의 물건에 손을 댔습니다.”

배 씨는 뉘우치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현행법상 중형은 피할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법정을 나서는 모습을 지켜보던 방청객들은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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