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불법체류 외국인 女근로자들의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20일 03시 00분


성폭행 등 범죄 당해도 고국 쫓겨날까 신고 못해
시민단체 “인권보호 노력 한계… 범죄자 엄벌만이 유일한 해법”

16일 오전 1시경 광주 광산구의 한 원룸. 불법체류자인 캄보디아인 A 씨(25)는 같은 캄보디아 사람인 B 씨(26·여)의 방에 침입했다. B 씨가 놀라 소리를 지르자 주먹으로 얼굴을 5, 6차례 때린 뒤 B 씨를 성폭행하고 잠들었다. 술에 취한 A 씨가 방에서 그대로 잠들었지만 B 씨는 7시간 뒤 자신의 여동생(23)이 올 때까지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B 씨도 불법체류자여서 경찰에 신고하면 강제퇴거당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2009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국내에 왔다. 남편과 직장 문제 등으로 갈등하다 2년 뒤 결국 이혼했다. 그녀는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공장에서 번 돈을 부모에게 송금했다. 올 2월경 A 씨를 만나 사귀다 최근 헤어졌고 A 씨가 앙심을 품은 것이다.

광주지방경찰청은 19일 A 씨를 구속했다. B 씨는 경찰에서 “고국으로 쫓겨날 것이 걱정돼 신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B 씨가 원스톱 센터에서 치료와 상담을 받도록 조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B 씨가 성폭행 피해자이지만 현행법에 따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불법체류 외국인 여성 근로자들은 성폭행을 당해도 신고조차 못 하는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광주이주여성지원센터는 불법체류 외국인 여성 근로자의 성폭행 상담 건수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피해 여성들은 신분 노출을 꺼려 상담조차 기피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도 이 같은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성폭행 가해자는 대부분 같은 처지의 외국인 근로자. 불법체류 여성 근로자들이 성폭행을 당해도 신고를 못 한다는 약점을 노리며 범행을 저지르고 있다. 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일부 시민사회단체가 불법체류 여성 근로자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불법체류 여성 근로자를 성폭행한 범인을 법원에서 엄벌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광주#불법체류#여성근로자#성폭행#범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