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호찌민에서 자동차로 꼬박 3시간을 달려 찾아간 빈롱종합병원의 복도는 어린 환자들로 북적거렸다. SK텔레콤과 세민얼굴기형돕기회, 베트남 108국군병원이 함께하는 얼굴기형 어린이 무료수술 사업 대상자로 선정된 어린이들이었다. 입술과 잇몸이 갈라지거나 짝눈이 심해 얼굴이 일그러진 어린이와 보호자들은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한 대 없는 찜통 같은 복도에서 종일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 수술실 앞 복도를 오가는 한국 의료진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가난 때문에 평소 병원이라곤 가본 적이 없던 그들에겐 이번이 환한 미소를 되찾을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 휴가 대신 봉사 선택한 의사들
베트남에는 언청이(구순구개열·입술이나 입천장이 갈라지는 선천성 기형) 등 안면기형 환자가 무수히 많다. 의료수준이 낮은 데다 보건의식도 약해 임신 중 약이나 음식을 잘못 먹어 탈이 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팍팍한 베트남 가정에서는 출산 전에 병원을 찾아가 태아 건강을 체크하는 일은 꿈꾸기조차 힘든 일이다.
이 때문에 백롱민 분당서울대병원 부원장(단장)을 비롯해 성형외과와 마취과 의사 17명, 간호사 4명, 의대생과 자원봉사자 등 39명으로 꾸려진 의료봉사단은 8박 9일 동안 매일 30여 건씩 수술을 하느라 말 붙이기가 미안할 정도로 바빴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을 위해 컨디션 조절을 하느라 의료진은 일과 후 저녁에도 술 한잔 마음 편히 마시지 못했다.
빡빡한 일정 탓에 얼굴은 푸석푸석해졌지만 의료봉사단은 에너지가 넘쳤다. 백 단장과 백병원에서 함께 근무했던 인연으로 10여 년째 베트남을 찾고 있는 윤인대 윤&정성형외과 원장은 “봉사활동 기간이 성형외과 성수기인 대학생 방학 때와 겹쳤지만 어린아이들을 한 번 더 안아주고 함께 웃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베트남행 비행기에 올랐다”며 활짝 웃었다. 백 단장을 포함한 상당수 참가자는 소속 병원에 아예 휴가를 내고 봉사활동에 참가했다.
○ SK텔레콤의 우직한 베트남 사랑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가는 시간이 확인해 주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1996년 시작해 한 해도 거르지 않은 SK텔레콤과 세민얼굴기형돕기회의 베트남 얼굴기형 어린이 무료수술 봉사는 진짜 사랑이라고 할 만하다.
백 단장은 “베트남 봉사활동이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SK텔레콤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SK텔레콤은 백 단장의 친형이자 세계적 성형외과 의사인 백세민 박사(전 인제대 서울백병원 교수)가 베트남 의료봉사 활동을 처음 시작한 1996년부터 재정적 후원을 해오고 있다. 외부에 갓 문호를 연 베트남의 가능성을 보고 민간교류의 ‘씨앗’을 뿌리는 일인 백 박사 형제의 의료봉사 활동에 드는 비용 전액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SK텔레콤은 그 이후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베트남 의료봉사 지원은 단 한 차례도 끊거나 줄이지 않았다. 다른 비용은 줄일지언정 어린 나이에 또래들과 다른 외모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아이들을 돕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백 단장을 비롯한 의료봉사단의 우직함도 SK텔레콤 못지않다. 의료봉사단은 수술할 때 집도는 반드시 전문의가 하고, 의대생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는 간혹 메스를 잡는 전공의조차도 수술실에서는 보조만 하도록 역할 분담을 분명히 했다. 베트남 환자들은 사후 관리가 어려운 만큼 사실상 마지막인 단 한 차례의 수술에서 최고의, 완벽한 결과를 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베트남 현지에서 SK텔레콤과 한국 의료봉사단의 이 같은 태도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베트남 의료진을 이끌고 빈롱 의료봉사에 참가한 군의관 부응옥람 대령은 “수술 능력이 뛰어나고 성실한 한국 의료진과 함께 일하는 것은 의사로서 큰 행운”이라며 “이 프로그램이 앞으로도 오래 유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는 SK텔레콤의 현지 사회공헌활동을 높이 평가해 2008년 김신배 당시 SK텔레콤 사장(현 SK그룹 부회장)에게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 국가우호훈장’을 수여했다.
○ 17년 동안 찾아준 3000명의 미소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 20주년인 올해 베트남 의료봉사단은 뜻깊은 환자를 맞았다. 태어날 때부터 입술(구순)과 입천장(구개)이 갈라지는 구순구개열을 앓아온, 13개월 된 레티후엉꾸인 양이 17년째 베트남을 찾고 있는 한국 의료봉사단의 3000번째 손님이 된 것이다.
레티후엉꾸인 양의 엄마 쯩티W란 씨(20)는 “갈라진 입술 사이로 우유가 흘러내리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지만 병원비 때문에 수술을 받을 엄두를 못 냈다”고 말했다. 딸의 얼굴 기형 때문에 시댁과도 심각한 불화를 겪었다는 그녀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한국 의료진에게 연신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했다.
수술을 받은 어린 환자와 부모들은 더이상 얼굴 때문에 주위의 놀림을 받지 않게 됐다는 사실을 가장 반겼다. 오른쪽 눈꺼풀이 비정상적으로 처지는 안검하수 증세로 수술을 받은 까오녁꾸인 양(14)은 “이제는 학교에서 더이상 ‘왕따’를 당하지 않을 것 같다”며 기뻐했다. 과학 과목을 가장 좋아한다는 그녀는 “의사가 돼서 나처럼 아프지만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베트남 어린이 돌보기에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행복한 소셜 기부’ 캠페인도 벌였다. SK텔레콤은 이용자들이 SNS에 베트남 얼굴기형 어린이를 응원하는 글을 남기거나 게시물을 퍼 나를 때마다 1000원씩 적립해 800만4000원을 모았고, 이 돈으로 가방, 학용품 세트를 사 베트남 어린이들의 새 출발 축하선물로 나눠줬다. ▼ 김정수 SK텔레콤 CSR실장… “사람에 투자해 나무 키우듯 親韓 감정 키울 것” ▼
“베트남 얼굴기형 무료수술은 사람을 위한 투자입니다.”
김정수 SK텔레콤 CSR실장(사진)은 17년째 베트남 얼굴기형 어린이 무료수술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기업의 사회공헌은 나무를 키우듯 인재를 기르는 일이며, 이 사업도 그 일환”이라고 말했다.
의료봉사 지원이 당장은 사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술을 통해 미소를 찾은 베트남 어린이들이 늘어나고 한국에 우호적인 이미지를 간직하면 그 과실이 결국 우리나라와 SK에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그는 “17년간 3000여 명의 베트남 얼굴기형 어린이를 도울 수 있었던 것은 그 같은 믿음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얼굴기형 수술사업 지원은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자’는 SK그룹의 사회공헌활동 정책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SK텔레콤과 베트남 의료봉사단은 매년 활동을 마친 뒤 모든 수술장비를 현지 의료진에게 기부한다. 또 매년 베트남 의료진을 수술에 참여시켜 우리나라의 앞선 의료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언젠가는 베트남 의료진이 스스로의 힘으로 얼굴기형 어린이들을 고쳐줄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주려는 것이다.
SK텔레콤의 이 같은 사회공헌활동 방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생각과 닿아 있다. 김 실장은 “최 회장은 ‘기업의 기부만으로 빈곤, 장애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며 해법을 고민해왔다”며 “SK그룹이 기업의 노하우를 소외계층에 전달해 사회적 기업을 운영할 기업가를 키우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돈과 경영 노하우를 전수해 세운 사회적 기업이 자리를 잡으면 소외계층의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고 기업활동을 통해 번 이윤을 지속적으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는 얘기다.
SK그룹은 그룹 사회공헌활동의 핵심인 사회적 기업 육성을 국내에서 해외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최 회장은 6월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20 기업지속가능성 포럼’에서 “전 세계 사회적 기업 생태계의 주요 이해관계자가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웹 포털 ‘글로벌 액션 허브’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의 핵심역량인 정보통신 기술을 사회적 기업의 해외 확산에 활용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SK텔레콤이 기업의 사회공헌 확대를 위해 유엔이 만든 글로벌 협의체인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 회원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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