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부터 어려운 이웃에 쌀…
올해도 10kg들이 2000포대 대구 수성구에 전달 후 사라져
“올해도 어김없이 키다리아저씨가 오셨어요.”
대구 수성구에서 해마다 추석을 앞두고 이뤄지는 한 노신사의 ‘보이지 않는 선행’이 화제다. 90대의 이 노신사는 2003년부터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해 달라”며 쌀을 기부해왔다.
그의 조건은 단 하나. ‘수혜자를 밝히거나 언론에 공개하면 안 된다’는 것. 10년 동안 기증한 쌀은 2억여 원어치로 구청 직원들은 미국 여류작가 진 웹스터가 1912년 발표한 아동문학 작품 이름(원제 ‘다리긴 거미’)을 따 그에게 ‘키다리 아저씨’라는 별명을 붙였다.
올해는 다른 해보다 보름 이상 늦은 19일 연락이 왔다. 아흔을 넘긴 고령이라 ‘혹시나’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그는 이날 건강한 모습으로 수성구민운동장 주차장에서 10kg들이 쌀 2000포대(4000만 원 상당)를 내려놓고 사라졌다. 그는 “이번 추석에는 북한에서 온 저소득 가정에게 쌀을 전달해 달라”며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실향민과 아픔을 나누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평안남도가 고향인 그는 6·25전쟁 때 월남해 대구에 정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양복 도매상을 하며 모은 돈으로 매년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10여 년 전 부인과 사별한 뒤 홀로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성구는 여러 번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려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2005년 연말에는 당시 구청 복지행정과장이 주민을 대신해 인사를 전하려 현장에 나갔다가 “여기 나올 시간에 다른 이웃을 돌보라”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혼쭐이 났다. 당시 구청장 역시 그에게 감사패를 보내려 했지만 한사코 거부해 결국 감사 편지로 대신했다.
김태동 수성구 희망복지단장은 “그의 조용한 선행이 이제는 희망 나눔의 대명사가 됐다”며 “언제까지나 건강하셔서 어려운 이웃과 오래 함께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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