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제주 제주시 조천읍 에코랜드골프장(28홀) 에코코스 4번홀 그린. 직원들이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약’을 뿌렸다. 이 약은 농약이 아니다. 식물에서 추출한 사포닌 성분이다. 사람이 먹어도 무해하다. 그린 잔디뿌리를 갉아먹는 나방 유충, 땅강아지 등을 잡기 위해 값싼 농약을 쓰지 않고 비싼 식물 추출액을 뿌리는 것이다. 옆 홀 페어웨이에서는 인부들이 잡초를 뽑고 있었다. 손으로 제거하는 데 총인원 4000여 명이 동원된다.
이 골프장은 2009년 10월 개장하면서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골프장 운영을 선언했다. 3년이 되면서 서서히 변화가 찾아왔다. 연못에는 길이 15∼20cm에 이르는 미꾸라지가 나타났고 저녁에는 반딧불이가 페어웨이에서 불을 밝히고 있다. 습한 날이면 달팽이들이 카트도로를 점령하다시피 한다. 자연생태계가 살아 숨쉬는 국내 최초의 ‘무(無)농약 골프장’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무농약 골프장을 만드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개장한 지 1년 만에 위기가 닥쳤다. 여름철 집중호우가 지나간 뒤 잔디가 죽기 시작했다. 잎마름병 등 질병이 잔디를 빠른 속도로 잡아먹었다. 항균 미생물제제를 뿌려도 소용이 없었다. 파란 잔디가 있어야 할 그린은 모래바닥이나 다름없었고 페어웨이 잔디는 군데군데 구멍이 났다. 무농약 경영 방침을 포기할까도 싶었다.
그러나 초심으로 돌아갔다. 다른 골프장의 2, 3배에 달하는 그린 관리 비용을 감수했다. 페어웨이 잡초를 없애기 위해 잔디 깎는 기계를 개조해 잡초만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성과도 거뒀다. 국내외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다양한 미생물제제를 도입하고 정기적으로 토양과 질병에 대해 검사를 하며 잔디를 살려나갔다.
한번 살아난 잔디는 병해충에 강해졌다. 다른 골프장은 장마철을 전후해 발생하는 병해충을 막기 위해 다량의 농약을 살포했지만 에코랜드골프장 측은 평소와 다름없이 잔디를 관리해도 충분했다. 미생물제제로 힘을 기른 잔디는 병해충 피해가 있더라도 회복하는 시기가 빨랐다. 자생력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의미다. 정근호 코스관리팀장은 “지금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있지만 병해충을 이겨내는 잔디를 보면서 무농약 골프장이 성공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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