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김기사’를 보며 고향길 운전을 맡는 동안 옆자리의 친구는 ‘애니팡’을 하며 무료한 시간을 달랬다. 고향에 내려가니 대선 얘기는 세 번째로 밀렸다. 모처럼 만난 친지들은 애니팡 점수 높이는 법을 먼저 얘기했고 가수 싸이가 두 번째였다. 대선 얘기는 맨 뒤였다.
김기사는 록앤올이라는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 개발회사가 만든 내비게이션이고, 애니팡은 선데이토즈가 만든 스마트폰 게임이다. 추석 연휴 김기사 앱의 접속자 수는 평소 사용량이 가장 많은 주말의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애니팡은 추석 직전 하루 평균 800만 명까지 올라갔던 방문자 수가 연휴 때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돌파했다.
○ 의도된 단순함
김기사와 애니팡은 의도적으로 단순하게 만들어졌다. 김기사에는 다른 내비게이션이 도입한 3차원(3D) 입체지도나 경로 모의주행 기능이 없다. 길만 잘 안내하면 된다는 생각에서다. 자주 찾는 곳을 저장하는 ‘즐겨찾기’는 다른 내비게이션처럼 가나다순으로 배열하지 않고 벌집 모양의 그래픽을 갖췄다. 한눈에 거리와 위치를 알기 쉽도록 한 것이다.
애니팡의 게임 방법은 동일한 동물그림을 연속 세 칸으로 놓는다는 게 전부다. 게임방법 설명도 없앴다. 스마트폰에서 앱을 켜고 게임을 시작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이런 식으로 더 많은 기능을 넣기보다 꼭 필요한 기능 외에는 최대한 빼는 방식을 거꾸로 택한 게 성공의 비결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10년 가까이 ‘한 우물’만 판 경험이 이런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했다.
록앤올을 만든 사람들은 2000년 위치 기반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인 ‘포인트아이’를 설립한 부산대 전자계산학과 대학원 출신들이다. 10년 이상 내비게이션업계에서 일한 이들은 김기사를 준비할 때도 국내외 300여 개의 내비게이션을 살펴보면서 장단점을 분석했다.
선데이토즈 창업자 3명도 명지대 컴퓨터공학과 동기들로 2000년대 초반부터 한게임과 엔씨소프트 등 국내 대표적인 게임업체에서 병역특례로 근무했다.
박종환 록앤올 대표(40)는 “여기에까지 이르게 한 가장 큰 힘은 많은 현장 경험”이라고 말했다.
○ 수익 가져온 무료 서비스
무료 서비스라는 점도 성공의 한 비결이다. 사실 두 회사 모두 처음에는 열심히 만든 앱을 제값 받고 팔고 싶었다. 하지만 경쟁이 불가능했다. 김기사는 SK텔레콤의 ‘T맵’, KT의 ‘올레내비’ 같은 통신사가 만든 무료 내비게이션 앱과 겨뤄야 했다. 박 대표는 “처음에는 유료로 팔았지만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올해 1월부터 완전 무료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그 결정이 성공을 불렀다. 최근 2, 3년 사이 팅크웨어(아이나비), 파인디지털 등 내비게이션 단말기를 만들던 업체들은 매출 하락을 겪었다. 하지만 록앤올은 단말기를 만들지도 않았고, 유료 앱을 성공적으로 팔아본 적도 없어 잃을 게 없었다. 어차피 별로 벌지 못할 돈, 무료로 내놓고 광고 매출이라도 키워 보자고 생각한 것이다.
애니팡의 경쟁자는 수없이 많은 스마트폰 게임이었다. EA나 스퀘어에닉스 같은 글로벌 대형 게임회사가 아니라면 유료화는 섣불리 도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료 서비스가 오히려 장점이 됐다. 카카오톡을 이용해 입소문을 내는 방식으로 게임을 알리니 마케팅 비용이 줄었다. 그 대신에 소수의 사용자가 게임을 하는 데 필요한 ‘하트’를 살 때 생기는 수입만으로 하루 1억 원 이상을 벌고 있다.
선데이토즈 이정웅 대표(31)는 “굶어죽지 않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