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법규 위반으로 제 몸값의 12배가 넘는 과태료 폭탄을 맞고도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는 외제차가 있다.
미국 자동차 제조사인 GM이 1996년 생산한 뷰익 파크애버뉴. 이 차는 2007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신호위반이나 과속, 불법 주정차 등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2307번이나 딱지를 떼였다. 고속도로에서 하루에 열 번 넘게 속도위반을 한 적도 있다. 과태료가 1억2473만 원이나 부과됐지만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배기량 3800cc로 출시 당시 가격이 약 4000만 원이며, 현재 거래가는 800만∼1000만 원 선이다. 체납된 과태료가 차량 가치의 12배가 넘는다.
이 차는 요즘도 도로를 누비며 각종 법규 위반을 하고 있지만 경찰은 속수무책이다. 누가 이 차를 끌고 다니는지 모르는 ‘대포차량’ 상태인 것이다. 차 소유주로 등록돼 있는 나모 씨(32)는 “2007년 중고차 매매상을 할 때 이 차를 팔았는데 산 사람이 명의를 이전하지 않은 채 타다가 되팔아 지금은 누가 타는지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전국을 뒤져 이 차를 색출하지 않는 한 ‘무법 주행’을 막을 도리가 없다. 경찰 관계자는 “과태료는 법적 처벌이 아닌 행정 처분이라서 해당 차량을 범죄자처럼 공개 수배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이 차처럼 과태료 악성 체납차량은 전국에 2000대가 넘는다. 1298회 체납해 7402만 원을 내야 하는 아반떼 승용차 등 1000만 원 이상 체납한 차량이 125대, 50회 이상 체납한 차량은 2017대다. 체납액을 합하면 103억2000여만 원에 이른다.
문제는 차 주인들이 과태료를 내지 않고 버티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 대부분 제3자 명의로 된 대포차량이어서 교통법규를 마음대로 위반하고 범죄에도 자주 이용된다. 과태료 체납 차량의 상당수가 감시망에 포착되지 않는 도로 위의 ‘시한폭탄’인 셈이다.
4월 경기 수원시에서 20대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오원춘도 평소 ‘대포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경찰은 그가 폐차된 오토바이의 번호판을 달고 다니며 자신의 범죄행각을 감추려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7월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들이 파업 불참자들의 화물차를 연쇄 방화할 때도 대포차가 이용됐다. 여성을 차에 타게 한 뒤 살해하는 수법을 쓴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자기 어머니 명의의 차를 사용하다 덜미가 잡혔다. 만약 강호순이 대포차량을 썼다면 희생자가 훨씬 많아졌을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대포차가 뺑소니 사망 사고를 내면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어 범인 잡기가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2010년 감사원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대포차가 2만1000대나 굴러다닌다.
경찰은 대포차 유통을 막기 위해 과태료 체납 차량을 집중 단속하고 있지만 한계가 많다. 지난해 7월 시행된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따라 과태료 체납으로 압류된 차량은 사고팔 수 없고, 사용 중인 차의 명의 이전을 하지 않은 경우 운전자를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 간 차량 거래를 일일이 감독할 수 없는 데다 명의 이전을 하지 않은 사람이 “지인에게 잠시 빌려 타는 것”이라고 잡아떼면 단속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대포차를 막으려면 현재로서는 일제단속밖에 방법이 없다”며 “누군가가 헐값에 중고차를 넘기려 할 경우 대포차일 가능성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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