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가 확산되고 있는 경북 구미시 불산(弗酸·불화수소산)가스 누출 사고 지역에 3차 피해 가능성까지 우려되고 있다. 10일경 중부지방에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된 가운데 토양에 남아있을 것으로 보이는 불산이 지하수와 낙동강을 오염시킬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날 사고 지역은 흐릴 것으로 예보됐지만 기상 상황은 유동적이라 만약 비가 내린다면 피해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 지하수 오염 등 3차 피해 우려
기상청은 7일 “북쪽을 지나는 기압골의 영향으로 10일경 수도권과 강원, 충남북 지역에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했다. 강수량은 1∼5mm로 비교적 많지 않은 양. 하지만 기상 상황은 유동적일 수밖에 없어 경북 지역에까지 비가 내린다면 지하수나 하천 오염 등 3차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
정부와 구미시는 지금까지 주민과 해당 업체의 1차 피해, 근처 마을과 공장에 미친 2차 피해에 대한 조치에만 주력했다. 3차 피해를 막기 위해 봉산리 마을에 소석회와 물을 살포했지만 논밭이나 야산 등 다른 곳에는 중화제 살포 등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불산은 자연 상태에서 정화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가 내릴 경우 토양에 잔류한 불산이 땅으로 스며들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불산에 의한 토양오염도 조사 결과는 9일경 나올 예정이다. 대기 중 잔류 여부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정밀조사는 8일에야 시작된다. 박정임 순천향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불산의 불소이온은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며 “토양과 식물에 남아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 살길 찾아 나선 주민들
사고 지역인 봉산리 주민들은 6일 자체적으로 ‘피난’을 결정하고 인근 백현리 환경자원화시설(쓰레기 매립 및 소각시설)로 거처를 옮겼다. 정부와 지자체의 ‘늑장대응’에 견디다 못한 주민들이 사고 열흘째가 되면서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선 것.
자원화시설 3층에 마련된 220m²(약 60평) 남짓한 공간에는 노인과 어린이 등 110여 명이 얇은 이불에 몸을 맡긴 채 밤을 지냈다. 지급된 물품은 개인당 이불과 수건, 세면도구가 전부다. 대부분 급하게 집을 나서면서 변변한 옷가지조차 챙기지 못했다. 김희권 씨(77)는 “다들 불안해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며 “불산 때문인지 기침과 열이 심해 잘 먹지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임천리 주민 190여 명도 해평면에 있는 청소년수련원으로 대피했다. 일부는 친척집 등으로 옮겼다. 모든 주민이 대피한 것은 아니다. 마을에 남은 주민 지석연 씨(87·여)는 “남편(90)이 나이가 많고 거동이 불편해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진료를 받은 사람은 사망자를 포함해 3178명에 이른다. 또 77개 기업에서 177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가축 3209마리, 농작물 212ha, 산림 67ha 등의 피해도 접수됐다. 2차 피해를 입지 않은 구미시 다른 지역에서도 농산물 판매 저하 등 간접 피해가 우려된다.
○ 총체적 ‘부실 대응’
사고 이후 관련 기관의 대응은 부실투성이다. 구미시는 사고 직후 반경 300∼400m 이내 주민을 대피시켰다. 이어 3시간 반가량 지나서야 반경 1.4km 이내 주민들에게 대피를 유도했고 이로부터 약 1시간 뒤 반경 3km 이내 주민들을 대피하도록 했다. 사고 발생부터 주민 대피까지 4시간이 넘게 걸린 것이다. 이는 사고가 난 지 1시간 17분 뒤에야 대구지방환경청에 접수가 된 데다 이후 상황 파악 및 정보 전달이 계속 늦어졌기 때문이다. 대피 명령에도 불구하고 근처 일부 공장은 조업을 계속했다. 또 유해화학물관리법에 따르면 주민을 대피시킬 때 응급조치 요령, 대피 요령을 알려야 하지만 주민들은 이런 내용을 전혀 몰랐다.
대피 후 복귀 조치는 더욱 부실했다. 화학유해물질 유출사고 위기대응 매뉴얼에는 인명구조, 제독작업, 잔류오염도 조사가 끝난 뒤 주민 복귀를 결정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제독작업이 끝났다는 이유로 사고 다음 날인 28일 오전 11시 주민들을 돌아오게 했다.
사고 직후 현장에 가장 먼저 투입된 소방관과 경찰조차 불산의 맹독성을 전혀 몰랐다. 방독면 방호복 같은 기본적인 장비를 갖춘 인력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반소매 차림으로 현장에 출동한 대원도 있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A 씨는 “지금도 눈이 아파 안약을 넣어야 하고 쉽게 피로를 느끼는 등 이상증세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상황이 악화되는데도 정부의 합동조사는 사고 발생 8일 만인 5일에서야 시작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주영순 의원(새누리당)에 따르면 유해·위험물질을 처리하는 업체는 ‘중대산업사고 예방센터’의 사고 예방 점검 및 개선 등의 관리를 받아야 한다. 이번에 사고가 난 휴브글로벌은 2008년 7월 설립 당시 근로자가 4명으로 기준(5명 이상)에 미달돼 관리 대상에서 제외됐다. 근로자가 올해 7명으로 늘어났지만 회사가 자발적으로 보고서를 내도록 하는 제도적인 허점 때문에 여전히 관리 대상에서 빠졌다. 이 회사는 중화제 등 자체 방제물품을 갖추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재난합동조사단은 8일 오전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조사단은 사흘간 사고 경위와 피해 실태 등을 확인했다. 사고 지역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될 것으로 보인다. 자연재해가 아니어도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된 경우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2007년 충남 태안 원유 유출 사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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